성당에 가지 못했습니다
며칠 전 주일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연재 중인 장편 원 고를 쓰지 못해 늘 작업하는 카페에 앉아 있어야 했죠. 그 런데 그날은 저희 본당이 오랜 기도와 노력으로 새 성전 을 지어 축복식을 하는 날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축 하와 격려를 나누는, 대주교님도 오시는 말 그대로 축제 의 날이었지요. 하지만 마리아는 루카복음 10장의 이야 기처럼 좋은 몫을 선택하지 못하고 마르타처럼 종 잡을 길 없는 소설 노동을 택했습니다. 아쉽지만 저녁 미사를 가야겠다고 생각했지요.
하지만 작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작은 인터넷 게 시물에 마음이 상하면서 문제는 시작되었습니다. 평소라 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지만 몸이 지쳐 저는 더 화나고 억울하다는 생각 속으로 들어갔지요. 결국 저는 진정에 도움이 되는 약을 먹고 잠을 자버렸습니다. 일어나니 더 슬픈 패배감이 들었습니다.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라 분 노 따위에 져서 축제 자리를 놓치다니, 성당이 새 옷을 갈 아입는 동안의 일들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성당에서 그림 자처럼 조용한 신자이지만 개축 공사가 무사히 끝나기를 열심히 기도하고 바랐습니다. 신부님이 모든 재산을 내놓 으시고, 다른 성당으로 공사 모금을 가셨다는 이야기를 들은 날에는, 곰곰이 생각하다 성당 사무실을 방문해 의 자 한 개의 돈을 보태기도 했습니다. 글 쓸 때마다 함께하 는 의자는 작가의 몸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러니 내 몫을 조금 더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분노 3일째를 겨우 보내고 있는데, 대모님께 안부 메 시지가 왔습니다. “별일없지? 마리아?” 평일 저녁 미사 에 참석해 대모님들을 뵙고 그날을 전해들었습니다. 실감 나고 행복했지요. 눈시울을 붉히는 이들이 얼마나 많았 는지, 요양원에 가시며 이 새로운 집에 선뜻 정성을 보태 고 가신 분의 이야기와 묵묵한 파수꾼처럼 공사장을 지키 신 분들, 무사히 공사를 끝난 새집에서 올린 첫 미사의 기 쁨과 감격. 대화를 듣고 나니 더 이상의 자책감도 아쉬움 도 분노도 없었습니다. 이야기를 통해 저는 그 자리에 다 시 있었으니까요. 만둣국을 사먹고 돌아가는 길에 성당의 야경이 보고 싶어졌습니다. 대모님들과 저는 서로 팔짱을 끼고 다시 성당에 갔지요. 새집이 좋은 마음은 다들 같은 지 신자분 몇몇과 신부님이 나와 계셨습니다.
“우리 성당 너무 멋져요!” 이건 저희의 말이었고 “아직 손볼 데가 많아요!” 이건 신부님 말씀이었습니다. 저는 어 느새 한층이나 더 높아진 성당 꼭대기를 바라보았지요. 우리가 정말 새 성전을 올렸단 말인가. 그런데 그날 저는 하늘에서 가만히 내려오는 손길을 본 것 같았습니다. 성 당 지붕을 슥 올려주시고 저희를 사람으로 서게 하시고 분노에 넘어져도 괜찮다며 일으켜 주시는 하느님의 손길 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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