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의 공간

상처받은 신앙 | 김진조 베드로 신부님(북면 본당)

松竹/김철이 2026. 4. 16. 10:00

상처받은 신앙

 

                                           김진조 베드로 신부님(북면 본당)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가장 인간적인 제자, 토마 스를 만납니다. 우리는 흔히 그를 의심 많은 토마 스라고 부르며 믿음이 부족한 제자로 기억합니다. 다른 제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다고 기뻐할 때 그는 차갑게 말합니다.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

 

그런데 여러분, 토마스의 이 의심스러운 태도가 정말 잘못된 것인가요? 체코의 신학자 토마시 할리크 신부는 그의 저서 『상처받은 신앙』에서 토마스의 의심을 전혀 다르게 해석합니다. 할리크는 ‘의심은 신앙을 깊게 만드는 정직한 태도’라고 말합니다.

 

부활은 죽음을 이긴 승리입니다. 그렇다면 부활 하신 예수님의 몸은 흠 하나 없이 깨끗하고 영광 스러운 모습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복음은 놀라운 사실을 전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몸에는 여전히 십자가의 못 자국과 창에 찔린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는 점입니다.

 

예수님은 왜 끔찍한 흔적을 지우지 않으셨을까 요? 할리크 신부는 여기서 신앙의 본질을 발견합 니다. 만약 예수님이 고통의 흔적을 싹 지운 채 나 타나셨다면 환상이나 유령이었을지 모릅니다. 그 러나 예수님은 당신이 겪으신 고통과 상처를 그대로 지닌 채 나타나심으로써 ‘내가 바로 너희를 위해 고 통받았던 그 예수다’라는 것을 증명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토마스의 의심을 꾸짖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의 상처를 만져보라고 몸을 내어주십니다. 그리고 토마스가 그 상처를 직접 만져 본 후에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토마스가 주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이렇게 고백합니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이 고 백은 머리로 공부해서 얻어진 것이 아니라 상처를 어루만지면서 가슴으로 터져 나온 고백이기에 가장 위대한 신앙고백 중 하나로 꼽힙니다.

 

한편, 여기서 중요한 신앙의 원리가 나옵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어디서 만나는가? 바로 상처 안에서 만납니다. 나의 상처와 이웃의 상처 안에서 하느님을 만납니다. 나는 상처 없는 삶, 고통 없는 신앙을 꿈 꿉니다. 하지만 하느님은 나의 상처를 지우시는 분 이 아니라 그 상처 속에 함께 계시면서 그 상처를 통해서 나의 신앙을 더욱더 성숙하게 하십니다. 또 한 하느님은 가난한 이들, 고통 속에 있는 이들, 억 압받는 이들의 상처 속에 함께 계십니다.

 

토마스가 예수님의 옆구리에 직접 손을 넣었을 때 비로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는 확고한 믿음이 생겼듯이 우리도 자신의 상처와 이웃의 상처가 있는 곳에 손을 뻗어 어루만져 줄 때 살아계신 하느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의 삶에 깊은 상처가 있습니까? 이제 그 상처를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 상처는 부 활하신 주님이 여러분과 만나는 통로입니다. 주변에 상처 입은 이들이 많이 있습니까? 그들에게 다가가 그들의 말동무가 되어주고 돌보아줍시다. 그들이 바로 우리가 손을 넣어 확인해야 할 ‘주님의 옆구리’ 입니다.

 

참된 신앙은 의심의 전혀 없는 상태가 아니라 ‘의 심과 함께 상처를 껴안고 인내하면서 상처 안에서 하느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오늘 교회는 하느님의 자비 주일을 지냅니다. 그 분의 자비를 바라면서 우리 모두 자신의 상처를 주님께 보여줍시다. 그러면 상처를 입은 주님께서 ‘나도 상처가 있다’라고 말씀하시면서 우리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실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져 줄 때 세상은 우리 안에서 살아계신 하 느님의 자비를 보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