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자해지, 그게 나였구나.
서진영 미카엘 신부님(병영성당 주임)
눈이 아릴 정도로 햇살이 빛나는 어느 여름. 빨래 말 리기 딱 좋은 날이었습니다. 마침 여름 신앙 학교를 마 친 뒤라 주인 잃은 수건들을 빨아 다시 쓰기로 했습니 다. 상당히 많은 수건들을 널다 보니 건조대에 자리가 부족했고, 없으면 만들면 된다는 생각으로 성전 뒤편 은행나무에 새로운 빨랫줄을 묶었습니다. 바람에 날 릴까 촘촘하게 집게까지 정성껏 집어 두었지요. 기분 좋은 여름날이었습니다.
그렇게 여름은 가고, 어느 겨울 같은 자리에 서서 모처 럼 옛 생각에 잠겼습니다. 지나간 시간만큼 빠른 것은 없지요. 스무 살, 신학교 1학년이었던 제가 부제품을 받 고 사제서품을 준비하며, 활기찼던 그 여름의 추억에 잠 겨 성전 뒤편을 서성이다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습니다. 그때 걸어둔 빨랫줄이었습니다. 주홍색 나일론이 얼마 나 질기고 좋은지 10년이 되어가도 빛은 바랬지만 여 전히 잘 걸려 있었습니다. 다만 눈길이 줄을 따라 묶인 나무둥치에 닿는 순간 크게 당황하고 말았습니다. 제 가 묶어둔 그 줄 때문에 나무둥치가 온전히 자라지 못 해 생장의 숨을 막아버린 것이었습니다. ‘나의 부주의 함이 그 오랜 기간 이 나무를 힘들게 했구나.’라는 생 각이 들었습니다. 그것도 모르고 나는 참 편하게 지냈 구나, 바로 옆에 살며 몇백 몇천일을 지나면서도 전혀 관심이 없었구나라는 사실에 크게 놀랐습니다.
묶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었던 것처럼 푸는 것도 그리 어렵지는 않았으나 나무둥치에 패인 상흔을 바 라보는 것은 참으로 미안하고 부끄러웠습니다. 말 못 하는 생명이라 다행이라 해야 할지, 아니면 그래서 이 렇게 무심했다고 변명을 해야 할지 여러 생각들이 지 나갔습니다. 한여름의 눈부신 태양처럼 지나간 추억 도 있지만, 아직도 빛바랜 빨랫줄 마냥 어딘가 남아 있 을 아픈 기억도 있겠지요. 님이 받은 고통은 모른 채 그냥 할 말 했을 뿐이고, 할 바를 다했다고 돌아선 일 이 숱하게 있겠지요.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눈물을 흘리시며 라자로에 게 이리 나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말 씀하셨습니다. “그를 풀어 주어 걸어가게 하여라.”
수많은 인연으로 묶이고, 묶고 사는 우리 혹은 자신 에게 뻔한 말 하나 합니다. 난 얼마나 많은 것들을 마 음에 묶어두고 여태껏 풀지 못하고, 혹은 풀지 않고 있 을까? 얼마나 많은 상처들이 남아야 풀 생각이 들까. 다들 알아서 풀며 살겠지라고 *‘지팔지꼰’하고 있지는 않나? 주님은 돌을 치워 문을 여시고, 풀어 주어 가라 하시는데, 못난 제자는 여태껏 묶고 삽니다.
따사로운 은총의 햇살로 이 음습한 마음도 뽀송하게 말려 주시길 빌어 봅니다.
* ‘자기 팔자 자기가 꼰다’의 줄임말로, 자신의 선택이나 행동으로 스스로 인생을 힘들게 하거나 곤란한 상황에 빠지는 것을 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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