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을 치워라, 그리고 이리 나와라
정동수 야고보 신부님(대건중고등학교 교목)
사람의 마음이 완전히 무너지는 순간은 눈물이 쏟아질 때가 아니라, 더 이상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게 될 때라고 합니다. 처음에는 기다립니다. 혹시라도 무엇인가 달라질 수 있기를 기대하며 마음을 붙잡고 서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조용히 하나의 결론에 이릅니다. “이제는 늦었다.”, “여기까지다.”, “더는 달라지지 않는다.” 그때 우리는 보이지 않는 돌 하나를 굴려 어떤 자리를 막아 버립니다. 그 돌 뒤에는 아직 말하지 못한 슬픔이 있고, 풀리지 않은 관계가 있고, 다시 시작하지 못한 삶이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바로 그 자리에서 시작됩니다. 라자로는 이미 죽었습니다. 그것도 나흘이나 지났습니다. 라자로의 무덤 앞에는 돌이 놓여 있고 그 안에는 깊은 침묵이 있습니다. 그 침묵 속에서는 죽음의 냄새가 올라옵니다.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더 이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마르타도 그렇게 말합니다. “주님, 나흘이나 되어 냄새가 납니다.” 이미 늦었다는 뜻입니다. 이미 모든 것이 끝났다는 체념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때 예수님께서 그 무덤 앞에 서 계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돌을 치워라.” 그 돌은 단지 무덤을 막는 돌이 아닙니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굴려 놓은 체념의 무게입니다. 더 이상 기대하지 않겠다는 마음, 이 일은 여기서 끝났다는 판단입니다. 예수님은 그 돌을 그대로 두지 않으십니다. 돌이 치워지자 막혀 있던 공간이 열리고, 그 안에 숨겨져 있던 냄새가 드러납니다. 사람들은 얼굴을 찡그립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생명이 들어갈 자리가 열립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큰 소리로 부르십니다. “라자로야, 이리 나와라.” 이 부르심은 죽은 이를 향한 외침이면서 동시에 닫혀 있던 세계를 향한 명령입니다. 어둠 속에 갇혀 있던 한 사람이 그 부르심을 듣고 빛을 향해 걸어 나옵니다. 그래서 부활은 단순히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는 사건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부활은 멈추어 있던 삶이 다시 길 위에 서는 일입니다. 멈춰 서서 더는 움직이지 않을 것 같던 삶이 다시 한 걸음을 내딛는 일입니다.
우리 안에도 무덤이 있습니다. 이미 끝났다고 생각하는 관계가 있고, 되돌릴 수 없다고 여기는 시간이 있고, 조용히 식어 버린 희망이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말합니다. 무덤은 끝이 아니라고 말입니다. 돌도 마지막이 아닙니다. 한 음성이 그 앞에 서기 때문입니다. 그 음성은 오늘도 우리를 부릅니다. “이리 나와라.” 그 음성은 체념보다 깊고 상처보다 넓으며 죽음보다 강합니다. 그 음성이 들리는 순간, 무덤은 더 이상 끝이 아니라 다시 삶이 시작되는 자리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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