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천사가 아닐까
어느 봄날, 당시 유치원생이었던 딸아이와 함께 남산 으로 벚꽃놀이를 갔습니다. 그런데, 저쪽에서 “아이가 배 수로에 빠졌어요!”라는 다급한 외침이 들렸습니다. 꽃잎 을 잡겠다고 하늘만 보고 달리던 아이가 자신의 키보다 훨씬 깊은 배수로에 빠진 것이었습니다. 아이는 곧바로 구조됐지만 얼굴이 온통 피범벅이었습니다. 응급실에서 39바늘을 꿰매고 나서야 피가 멈췄습니다. 마음을 가라 앉힌 아이는 사고 당시 눈에 잘 띄지 않는 배수로 안에서 혼자 울고 있었는데, 누군가 손을 뻗어 자신을 구해줬다 면서 “어쩌면 천사가 아니었을까.”라고 말했습니다.
뒤돌아보면 저도 누군가 손을 뻗어준 덕분에 지금껏 하 느님 근처에서 머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세례를 받 은 것은 중학교 때였는데 당시 집안에서 유일한 가톨릭 신자였던 엄마가 주일미사조차 눈치를 보며 참석하는 분 위기였습니다. 저의 용감한 입교 선언에는 사춘기 반항심 도 아주 없진 않았지만, 수년간 성당에 함께 나가자고 손 을 내밀어준 친구들, 그리고 피아노 선생님의 역할이 컸 습니다. 이후 바쁘다는 핑계로 미지근한 신앙과 냉담의 경계에서 살아오던 저를 다시 교회로 이끈 것은 회사 선 배들이었습니다. 방송업계 종사자의 심금을 울리는 강론 을 들을 수 있다며 교우회 미사를 소개해줬고, 매일 아침 을 ‘주님의 기도’ 묵상으로 시작하는 루틴을 가르쳐줬습니 다. 처음에는 몇 시간씩 기다려야 하는 판공성사를 빠르 게 볼 수 있다는 데 혹해서 갔는데, 교우회 선배들의 응원 으로 견진까지 받게 됐습니다. 교우회 활동이 중단된 코 로나 팬데믹 시기에는 본당 구역장님이 연락을 주셨습니 다. “온라인 모임이라면 직장인도 함께할 수 있지 않겠느 냐.”며 성경 통독 모임을 안내해 주셨고, 제가 중간에 포 기하지 않고 매주 정해진 분량을 읽도록 계속 독려해 주 셨습니다. 마음에 불평과 불만이 가득했을 때는, 루게릭 병으로 투병 중인 작가의 책과 감사 일기 노트를 보내준 선배도 있었습니다. 재작년부터는 갓 세례를 받은 후배가 점심시간 성경공부를 진행한다며 ‘필참’을 강요한 덕분에 매주 훌륭한 강의를 듣고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교회로부 터 멀어질까 싶으면 어디선가 누군가가 등장해 저의 팔을 붙잡고 하느님 가까이로 끌어당기는 느낌입니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 들겠다.”(마태 4,19) 이 모든 것이 하느님의 어장 관리일까 요? 마음이 따뜻한 형제자매님들이 제 주변에 많은 것도 놀랍지만, 이분들이 때맞춰 적절한 강도로 하느님의 그 물을 끌어당겨 왔다는 사실이 저에겐 더 신비롭게 다가 왔습니다. 제가 매일같이 방황하고 넘어지면서도 여전히 주님 뒤에 서 있는 건 이분들 덕분입니다.
가끔 점심시간 성경공부를 마치고 함께 참석한 교우 회 동료들에게 커피를 쏠 때가 있습니다. 그 커피에 담긴 마음을 이제 고백하려 합니다. “저를 하느님 말씀 속으로 이끄는 여러분은, 어쩌면 천사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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