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해성사의 은혜
해마다 판공성사 기간이 다가오면 마음이 편치 않 다. 특별히 큰 잘못이 떠오르지 않을수록, 고백할 죄를 애써 찾아야 하는 숙제처럼 느껴진다. 미사와 기도, 봉 사를 꾸준히 하고 있다는 안도감에 성사는 형식에 머 무르기 쉽다.
신부님은 강론 중에 “남의 죄 말고 자신의 죄를 고백 하세요.”라고 웃으며 말씀하신다. 하루에도 수십 명의 고백을 듣는 고해소를 떠올리면, 그 말씀이 얼마나 절 실한 당부인지 알 것 같다. 창살 없는 감옥처럼 좁은 공간에서 죄의 무게를 함께 짊어지는 일은 결코 가볍 지 않을 것이다. 하물며 자신의 죄가 아닌 이야기까지 쏟아낸다면, 그것은 옆집 쓰레기까지 들고 와 한꺼번 에 버리는 격이다. 그곳은 하느님 앞에 자신을 정직하 게 세우는 자리이다.
한동안 내 삶은 비교적 평온했다. 큰 갈등도, 감정의 소모도 줄어든 시기였다. 그러던 중 한 단체에서 함께 활동하던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깊은 상처를 입었다. 왜곡된 말과 오해 속에서 신뢰가 무너졌고, 억울함과 분노가 마음을 거칠게 만들었다. 변명조차 할 필요 없 다는 생각에 조용히 그 자리를 물러났지만, 마음속에 서는 상대를 단죄하며 스스로를 지키려 애썼다.
마침 그때가 판공성사 기간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성사 거리가 생겼다’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고해 소 앞 길게 늘어선 줄에서 기다리며, 성모님께 성사를 잘 볼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기도했다. 동시에 ‘남의 죄’를 고백하지 않도록 최대한 이성적이고 간결한 문 장으로 고백을 준비했다. 하지만 가림막 너머 신부님 앞에 앉는 순간, 전혀 예상치 못한 눈물이 쏟아졌다. 그동안 억눌러 두었던 감정이 한꺼번에 터져 나와 엉 엉 울기 시작했다.
평소 울음과는 거리가 먼 나였기에 당황스러웠다. 어린아이가 아버지 품에 안겨 울음을 토해내듯, 고백 보다 눈물이, 말보다 울음이 앞섰다. 그때 신부님의 “그리 힘든 일을 하느님께 고백하니, 얼마나 잘한 일 이냐”는 한마디는 판단이 아닌 위로로 다가왔다. 고해 소를 나서는 순간, 신기하게도 마음을 짓누르던 분노 가 사라지고 오히려 조용한 회개의 마음이 생겨나는 움직임이 느껴졌다. 상대를 피한 선택이 과연 참된 평 화를 위한 것이었는지,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다. 그 들에게 조금 더 부드럽고, 조금 더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겼더라면 어땠을까.
그날 이후 나의 일상은 다시 평온을 되찾았다. 고해 성사는 죄를 나열하는 자리가 아니라 햇볕에 빨래를 널어 말리듯, 자신을 하느님께 그대로 맡기는 시간임 을 느끼게 되었다. 고해소는 다시 일어서게 하는 품이 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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