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보따리

신앙 이야기 | 나는 오늘도 은총을 받습 니다

松竹/김철이 2026. 1. 10. 15:30

나는 오늘도 은총을 받습 니다

 

 

나는 요즘 들어 길을 잃어 헤매고 있습니다. 불빛 하나 없는 어두운 길거리를 걷는 느낌은 가슴속 눈송이를 더욱 차갑게 만들고 있습니 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 그 길이 맞는 길인지, 응원을 받으면 잘 해낼 수 있을지 불안함에 쌓여 내 삶이라는 지도 위에는 먼지가 가 득했습니다. 이 삶이 오롯이 내가 만든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 전 까지는 말입니다.

 

은총은 믿음보다 먼저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머니의 불러 있는 배와 아버지의 손길 아래 태어난 나처럼, 선배 사제들이 닦아놓은 과정을 후배 사제들이 걷는 것처럼, 순례자가 길을 걷기 위해 펼친 지도가 아 닌 이미 잘 다듬어진 흙길을 걷는 것처럼 은총이 있다면 자연스레 믿 음도 따라온다고 믿습니다. 하느님의 은총은 내가 믿고 의지할 수 있 는 첫 단추이자, 그 단추를 잡으라고 내미신 따스한 초청이었습니다.

 

그 빛은 절대적입니다. 나 역시 그 빛이 무섭고, 어떤 순간에는 ‘나와 같은 사람이 받을 수 있 는 사랑일까’ 하는 의심마저 들었습니다. 쳐다보지 못해 고개를 숙이고, 그 빛을 피해 도망친 적도 많았고 앞으로도 그럴지 모릅니다. 하지만 사람의 나약함을 잘 알고 계신 하느님은 내 가 자격이 없음을 아시고, 뒤를 돌아 도망치려는 내 옷자락을 잡아서라도 다시 돌아서게 하 시는 힘이 있으신 분입니다. 이 무조건적인 사랑이 내가 진정한 믿음이란 무엇인지 알게 합니 다. ‘이제 마지막인가’라는 생각으로 고개를 돌려 빛을 바라보고 비로소 느꼈습니다. 빛이란 눈을 향한 것이 아니라, 마음을 향하는 은총이라는 것을. 그리고 내 지도의 먼지를 털어 지 도를 함께 만들어 주시는 것이 믿음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나에게 믿음이란 하느님께서 지 도를 그릴 연필과 종이를 주심과 같습니다.

 

이것은 감정의 충만함이 아니라, 나의 지성과 의지의 결합입니다. 그분은 나의 불안과 불신을 봉헌하게 하시고, 식사 전 성호를 긋게 하시고, 무거운 마음의 짐을 내려놓기 위해 내게 고해 소의 작은 창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 무엇도 강요하지 않으셨습니다. 지도의 먼지를 터는 것 도, 그 길에서 혼자가 아니라, 동행하는 것도 강요하지 않으셨습니다. 이 모든 것은 나의 작은 행동부터 시작되었고, 그분께서는 나의 떨리는 손을 잡아주시기만 하셨습니다.

 

그러나 매 순간 장미길은 아닙니다. 나의 나약함은 그 누구보다 클지도 모릅니다. 새로운 지 도의 먼지가 쌓이고, 돌부리에 넘어지는 과정을 겪으며 마지막에 다다를 때까지 걸어야 합니 다. 만일 단 한 번의 은총이었다면, 나의 지도는 진작에 없어졌을 것입니다.

 

믿음과 은총은 서로 완성을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는 역동적인 순환 관계를 이룹니다. 내가 어둠 속에서 쓰러질 때마다 그분은 손을 내밀어주셨고, 이제 그 손을 잡아 응답했듯이 은총 의 순간은 끊임없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작은 행동으로 믿음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은총은 믿음에 물을 주는 생명수이고, 믿음은 그 물을 받아들여 자라난 열매가 잘 익어가듯 이, 새로운 은총을 만들 것입니다.

 

이제 나에게 불안은 없습니다. 지도가 완성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그분은 계속해서 연필을 깎아 주시고, 종이를 새로 주실 테니 두려움은 없습니다. 나의 믿음은 그분이 내 옷자락을 잡아주심으로 시작되었고, 그 은총은 지속될 것입니다. 나는 이 동행 속에서 그분의 은총과 사랑을 체험하며, 나의 작은 행동으로 그분께 영원히 응답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