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보따리

신앙 이야기 | 나의 성당 이야기

松竹/김철이 2025. 6. 30. 12:31

나의 성당 이야기 

 

 

1999년 5월 나는 모태신앙으로 이 세상에 태어 났다. 어린 시절부터 ‘주말이 되면 성당에 가야 한 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다른 친구들은 가족들 과 여행을 가거나 놀이동산에 갈 때, 나는 부모님 과 같이 성당에 갔다. 성당에 가면 친구들과 주일학 교 선생님들, 그리고 신부님과 수녀님도 볼 수 있었 다. 나에게 어릴 적 성당은 재미있고, 신나고, 즐거 운 곳이었다. 여름 캠프, 겨울 캠프를 통해 친구들 과 가까워지고 선생님들과 같이 놀면서 많은 추억 을 쌓을 수 있었다. 캠프를 다녀오고 나면 부모님에 게 캠프에서 있었던 일, 재미있게 놀았던 일을 이야 기하는 게 재미있었다.

 

그렇게 어릴 적 성당 마당에서 뛰어놀았던 아이 는 초등학생이 되고 주일학교의 어린이 반주자가 되었다. 어릴 적부터 피아노 학원에 다니던 나는 피 아노에 대해 흥미가 있었고, 그때 당시 성당의 수녀 님과 엄마의 권유로 10살 때부터 피아노 반주를 하 기 시작했다. 고사리 같은 작은 손으로 피아노를 뚱 땅뚱땅 치면 성가대 아이들이 나의 반주 소리에 맞 춰서 노래를 부르는 것이 좋았다. 초등학생 시절을 지나 중학생이 되자, 자연스럽게 중고등부의 반주 자가 되었다. 중고등부는 밴드부가 있었다. 밴드부 를 하면서 나의 피아노 소리와 드럼 소리가 성당에 울려 퍼지는 소리를 들으니 너무 행복했다. 그렇게 학창 시절을 지나 성인이 된 지금은 교리교사 7년 차로 청년회에서 피아노 반주를 하고 있다.

 

주변에 성당 다니는 지인들을 보면, 주말 하루도 비우기 힘들어한다. 나도 주말 내내 성당에 있으니, 주변 지인들이 “주말 내내 성당에 있으면 언제 쉬고 언제 놀러 다녀요?”라고 물어보는데, 그때마다 나는 “솔직히 주말 내내 성당 나오는 게 쉽지 않고 힘들긴 하지만 틈틈이 쉬고 있어요!”라고 말을 한다. 솔직히 주말에는 나도 마음껏 지인들과 여행 가고 싶고, 집 에서 뒹굴뒹굴하고도 싶지만, 지금 내가 하는 봉사 는 지금 아니면 나중에는 못 할 것 같고, 지금 안 하 면 후회할 것 같아서 열심히 하고 있다. 내가 이렇게 까지 봉사하는 데에는 엄마의 자리가 크다.

 

엄마는 지금까지도 성당에서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 내가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구역장, 반장을 맡으셨고, 레지오, 연령회, 성모회, 울뜨레아 등에 서도 활동하신다. 난 어릴 적에 엄마가 집에 없으면 성당으로 찾으러 갔다. 그럼 어디선가 우렁찬 우리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럼 속으로 ‘우리 엄마 는 오늘도 성당에서 사시는구나!’라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 난 어릴 적 엄마가 성당에 있는 게 싫었 다. 비 오는 날 내가 깜빡하고 우산을 안 가져와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면 “성당 행사 때문에 밖에 나 와 있어서 우산을 못 가져다주니 친구랑 같이 쓰고 와.”라고 말씀하셨고, 나는 그런 엄마의 모습이 싫 었다. 그래서 어릴 적에는 막 떼를 쓰면서 “엄마, 성 당에 안 가면 안 돼? 성당 가면 누가 상 줘?” 라고 말했고, 엄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엄마는 성당 가서 사람들 만나고 활동을 하는 게 세상에서 제일 즐거워. 엄마는 성당 가면 에너지 를 얻어와서 그래.”

그때 당시 나는 나이가 너무 어려서 무슨 말씀인 지 몰랐는데, 커서 그때의 엄마처럼 나도 성당에서 봉사를 하니 그때 하셨던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되었다.

 

지금 나는 성당에서 활동하면서 지치고 힘들고 놓고 싶을 때도 있지만, 그 속에서 힘이 나게 해주 는 우리 중고등부 친구들과 동료 교사들, 청년회 언 니들 오빠들이 있기에 내가 열심히 힘을 내서 활동 하고 있다. 나는 앞으로도 내가 지쳐서 “이젠 진짜 그만 해야겠다.”라고 말하기 전까지는 내가 할 수 있는 활동을 열심히 하고, 내가 도와줄 수 있는 부 분을 도와주면서 앞으로의 성당 이야기를 써 내려 갈 것이다.

 

내가 마음에 담고 있는 성경 말씀으로 이 글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나에게 힘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필리 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