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인지상정 아니겠나...’
오종섭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야음성당 주임)
‘인지상정(人之常情)’이라는 말을 우리는 잘 알고 있 습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의레 그러려니 하는 마음 을 일컫습니다. 사촌이 땅을 사면 같이 기뻐하지 못하 고 배 아파하는 맘보도,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처 럼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도와주면 고마운 마음을 지 니고 은혜 갚음을 하기보다는 오히려 그 선한 마음을 쉽게 생각하고 더 많은 것(보따리)을 뺏으려 하는 맘 보도, 호미 같은 작은 노력으로 해결할 일을 안일하게 방치하다가 가래 같은 큰 수고를 하며 겨우 수습하게 되는 경험들 모두가 인지상정 곧,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는 흔한 일들로 우리 각자도 살아가면서 흔히 경험 해본 마음 상태일 것입니다. 살다가 겪게 되는 이런 흔 한 경험들도 막상 내가 경험하면 맘속에 상처가 되고, 결코 기껍지만은 않은 씁쓸함을 남깁니다. 이럴 때 맘 을 다잡기 위해 ‘뭐, 인지상정 아니겠나...’하며 자조 섞 인 혼잣말을 하게 되지 싶습니다.
오늘 연중 제7주일 복음에서 우리는 “원수를 사랑하 라.”, “겉옷을 가져가려는 사람이 있으면 속옷까지 내어 주라.”, “다른 사람을 단죄하지 마라.” 같은 일상에서 경 험해 보지 못해서 이해하기 힘든, 그래서 ‘인지상정’이 라는 말이 통하지 않는 말씀들을 듣게 됩니다. ‘나에게 깊은 상처를 준 사람을 사랑까지 하라고?’, ‘내 것을 빼 앗으려는 사람에게 내가 나서서 그냥 주라고?’, ‘내가 받 은 만큼 돌려줘야 속이 시원하겠는데, 그냥 놔두라고?’
‘내가 바보가?’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또 ‘내가 예 수님 말씀하신 대로 안 한다고 세상에 누가 나보고 뭐 라 할 건데?’하는 생각도 당연히 듭니다. 그건 ‘인지상 정’한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사람에게 복음 을 잘 실천하라고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그것 역시나 ‘인지상정’한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우리들 에게 들려주시는 이 말씀들을 우리가 지닌 인간적인, 다르게 말하면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의지를 가지고 실 천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너무도 어렵습니다. 인간적으 로 가능하지 않아서, 하느님 은총의 도움이 반드시 필 요한 법인데, 그렇기 때문에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 서 이런 인간적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말씀들을 하시는 이유는 우리가 인간적인 노력에 더 매진하기를 바라시 는 것이 아니라, 우리 힘으로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하시는 하느님 은총의 도움에 우리 자신을 좀 더 열어 놓기를 바라시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하느님의 은총 속에서 신자분들 모두 편안한 한 주 되 시길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