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의 공간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 하청호 요셉 신부님(대전성모병원 행정부원장)

松竹/김철이 2025. 2. 23. 10:15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하청호 요셉 신부님(대전성모병원 행정부원장)

 

 

 

20년 전 저의 서품 성 구는 ‘보시오, 이 사람이 오.’(요한 19.5) 버림받은 예수님, 고통받는 구원 자의 모습입니다. 복음 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모 습은 문자 그대로 원수를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이 지요. ‘아버지 저들을 용 서해 주십시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혀 처형되 실 때에 조롱하고 욕하고 침뱉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뺨을 맞으시 고, 겉옷을 빼앗기셨으며, 저주하는 자들에게 축복하 셨고, 학대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시며 당신의 피로 율법을 복음의 축복으로! 하느님 사랑에서 흘러나오는 사랑의 형상으로 원수를 사랑하신 분, 이분이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라는 말씀 으로 사랑을 명령받습니다. ‘원수와 사랑’이라는 두 단어가 마치 ‘희망과 어둠’처럼 조합이 어울리지 않지만 두 단어는 함께 쓰이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사랑 이란, 저절로 생겨나는 좋아하는 감정이 아니라 대상과 관계없이 나의 의지로 하는 결단이기 때문입니다. 살아 가면서 가장 어려운 일이 있다면 단연 ‘용서하는 일’입니 다. 원수를 손절하지 않고 사랑한다는 것은 도대체 어떤 의미일까요?

 

‘너를 돌보아라’

예전에 겪은 일 중에 평소 조용하다가 가끔 한 번씩 소리를 치시는 신자분이 있었습니다. 성사를 다 드리고 힘들어 고해소에 잠시 앉아 있는데, 고해실 문을 밖에서 ‘쾅쾅쾅’ 때리면서 ‘끝났는데 안 나오고 뭘 하느냐!’라 고 소리를 치거나, 여러 신자분들 앞에서 버럭 큰 소 리로 말할 때는 여간 무안한 것이 아니었지요. 그러고 나서 성당에서 마주치면 사과는 없고 아무런 일이 없었 다는 듯 지나갑니다. 그때마다 저는 ‘원수를 사랑하여 라. 교우들은 자녀들이다.’ 속을 누르며 성체 앞으로 나아갑니다. 며칠을 기도하는데 머릿속에 들려오는 어떤 음성이 있었습니다. ‘너를 돌보아라’ 아주 뚜렷히 생각 속으로 새겨지는 그 음성 안에 제 마음속에 무엇 인가 놀라운 깨달음과 평화가 자리잡는 것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그의 죄를 짊어지고 계시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새 인간에게 필요한 법을 말씀하 십니다. 악에 악으로 맞서지 않고 선으로 대하는 법입 니다. 오직 선으로만 악을 몰아낼 수 있습니다. 여기 서 원수사랑의 목적이 드러납니다. 원수사랑은 악의 용인이나 묵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악의 제거를 지 향합니다. 원수를 사랑함-보복하지 않고 참아줌으로 써 변화시킬 수 있다면 그것만큼 보람있고 기쁜 일도 없겠지만, 아무리 참아주어도 변하지 않는 사람이 있 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절망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너희가 받을 상이 클 것이다. 하느님께서 누 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되어 갚아주실 것이기 때문이 다.’ 우리가 기억할 것은 하느님이 주시는 상은 원수가 회개하는 것을 보는 기쁨이 아니라 원수를 사랑함으로 써 악인의 집에도 해를 비추시고 죄인의 들에도 비를 내리시는 ‘하느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하느님 닮아 그분의 자녀가 되는 것이 바로 원수사랑에 대한 하느 님의 상입니다.

 

“우리가 흙으로 된 그 사람의 모습을 지녔듯이, 하늘에 속한 그분의 모습도 지니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