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손의 무게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성전에서 미사를 봉헌할 때, 그리고 기도할 때 잘하지 못했던 것 중 하나가 바로 ‘기도손’입니다. 기도손이라고 하면 왠지 초등부 주일 학교 학생들에게만 어울릴 법한 표현인데 저는 여전 히 이 단어가 참 좋습니다.
아쉽게도 저는 주일학교 다닐 때 미사에 집중하기 어려웠습니다. 복사를 서면서 전례에 봉사한다는 이 유로 ‘틀리지 말아야지.’, ‘잘해야지.’에만 마음을 쓰 며 성전에 앉아 있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마음을 다 해 미사에 참례하면 정작 하느님께는 그런 것이 전 혀 문제가 되지 않았을 텐데 말이죠. 많은 것들이 미 사 중에 제 관심을 끌며 저를 부산스럽게 하다 보니, 오롯이 말씀을 듣고 기도하며 손을 모으는 것은 더욱 쉽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모인 듯 안 모인 듯 꼼지락 거리는 제 손은 마음을 다해 기도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저는 살아오면서 여러 가지 회심의 기회를 선물 받 았습니다. 단순한 감동을 통해서, 때로는 말씀의 깨우 침을 통해서 회심을 체험했습니다. 언제부터라고 정 확하게 기억할 수는 없지만 저에게 기도손은 제가 온 전히 미사에 집중하도록 도와주는 회심의 계기가 되 었습니다. 손을 모으고 나면, 마음이 모이고, 그러고 나면 미사에 집중이 되고, 그러다 보니 말씀이 마음에 와닿는 것을 느끼곤 합니다. 이 과정들이 청년에 이르 러서야 가능해졌다는 것이 부끄럽지만, 이제는 당당 히 말할 수 있는 저의 체험담이 되었습니다.
우연한 계기로 다른 본당에서 미사에 참례할 일이 있었습니다. 그날 신부님께서는 아주 천천히 조심스 럽고 경건하게 기도와 복음을 봉독하셨는데, 하나의 깨우침이 스쳐 갔습니다. 아무리 긴 시간 말씀을 공 부하고 읽어왔다고 하더라도, ‘마음을 다해’ 읽을 수 없다면 말씀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고 나니, 기도 손은 더 깊은 집중을 통해 더욱 단단해질 수 있었습 니다.
아직 성경을 온전히 이해하고 따르기에는 부족한 저이지만 그래도 마음의 기도손 만큼은 하느님께서 지켜봐 주신다고 믿습니다. 이 시대의 청년으로 살면 서 많은 것에 부딪히고 때론 주저하며 분투하는 와중 에도 하느님을 찾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저의 현 실과 하느님께서 생각하시는 저의 쓰임은 분명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욕심을 버리고 말씀에 따라 살 아가고 싶은 제가 감내해야 하는 것들은 ‘기도손의 무 게’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새해가 밝았습니다. 우리 모두 함께할 때 더욱 빛 이 나는 하느님의 청년으로서 사랑으로 가득 차 발맞 춰 당당히 나아가는 대희년 2025년이 되도록 기도손 에 마음을 담아 기도합니다.
'세대간 소통'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말씀의 이삭 | 빅토르 할아버지 (0) | 2025.01.14 |
---|---|
누룩 | 우리와 같으신 그분 (0) | 2025.01.11 |
말씀의 이삭 | 칠레 남쪽 사람들은 친절하고 사랑이 넘칩니다 (0) | 2025.01.07 |
누룩 | 새 마음, 새 각오 (1) | 2025.01.04 |
청소년 특집 | 좋아하는 마음 (0) | 2025.01.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