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의 공간

또 다른 마리아들이 되기 |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님 | 작은 형제회(프란치스코회)

松竹/김철이 2024. 12. 22. 10:15

또 다른 마리아들이 되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님 | 작은 형제회(프란치스코회)

 

 

성탄을 코앞에 둔 대림 제4주일에 엘리사벳과 마리아가 만납니다. 두 분은 우리가 본받아야 할 분들입니다. 그러나 본받아야 할 지점은 다릅니다. 엘리사벳은 아이를 못 낳는 여자, 즉 석녀였으나 하느님의 사람을 낳았고, 마리아는 남 자를 모르는 처녀로서 하느님의 아드님을 낳았습니다. 그러 니 우리는 두 가지 차원에서 하느님을 낳는 것을 배웁니다.

 

첫 번째로 어떻게 엘리사벳처럼 석녀이면서도 하느님의 사람을 낳을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가 석녀, 더 정확하게 얘기하면 영적 석녀가 되어 인간을 낳는 데는 불 능자가 되고 하느님을 낳는 데는 가능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진정 그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인간적인 능력 자가 되고 싶습니까, 인간적인 능력은 없지만 하느님을 낳 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이렇게 질문을 던지면 우리 가 운데 대부분은 후자를 선택할 것입니다. 그런데 머리로는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우리 사회는 능력 지상주의 사회이고 그래서 갖가지 스펙을 쌓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습니다. 실제로 저희 수도자들도 성덕으로 하느님 나라를 증거하기보다 능력 으로 세상 사람들과 경쟁하려 하고, 그래서 자기 계발을 위해, 자격증을 얻기 위해 공부를 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추세를 보입니다. 그러나 이래서는 하느님을 낳을 수 없 으니 하느님을 낳는 사람이 되려면 오늘 복음의 엘리사벳 과 많은 성인이 그랬던 것처럼 이 세상의 무능력자가 되 어 하느님의 능력을 힘입는 사람이 돼야만 합니다.

 

이제 두 번째로 우리는 마리아처럼 자기를 포기하고 하느님을 낳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말하자면 내 안에 빈 자궁을 만들고 나를 빈 구유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됩니까?

 

제 생각에 그것은 자기 뜻을 포기하고 하느님 뜻을 받 아들이는 것이요, 공동선을 위해 자기주장을 꺾고 다른 이의 주장을 받아들이는 것이며, 하고 싶은 말이 많아도 자기 말은 줄이고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 것이고, 오늘 히 브리서의 주님처럼 하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저는 당신 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10,9) 그리고 예수님의 이 말씀 은 성모 마리아가 하신 말씀이기도 하지요. “보십시오. 저 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 38)

 

성탄까지 얼마 남지 않은 오늘, 나의 말을 하느님께 봉 헌함으로 나를 빈 자궁과 구유로 만들고, 하느님의 말씀 을 내 안에 모심으로써 하느님의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잉 태하는 또 다른 마리아들이 되어야겠습니다. 성 프란치스 코는 이렇게 권고합니다. “신성한 사랑과 순수하고 진실 한 양심을 지니고 우리의 마음과 몸에 그분을 모시고 다 닐 때 우리는 어머니들입니다. 표양으로 다른 이들에게 빛을 비추어야 하는 거룩한 행위로써 우리는 그분을 낳습 니다.”(《신자들에게 보낸 편지》 10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