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의 공간

오늘을 위한 그날 | 허규 베네딕토 신부님(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松竹/김철이 2024. 11. 17. 18:31

오늘을 위한 그날

 

                                       허규 베네딕토 신부님(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연중 시기의 마지막을 기다리면서 오늘 우리는 가난한 이들을 기억합니다. ‘가난하다’는 표현은 성경에서 경제적 으로 어려운 이들만을 지칭하지 않습니다. 억압당하거나 소외된 이들, 질병으로 고통받는 이들 등도 포함하는 넓 은 의미를 지닙니다. 아마도 현재의 관점에서 가난한 이 들에는 전쟁으로 가족을 잃고 사지로 내몰린 이들도 속할 것입니다. 그렇기에 ‘가난’이라는 말은 인간의 힘 때문에, 하느님께서 세우신 조화로운 질서에서 벗어나 있는 모든 이들을 가리킬 수 있습니다.

 

연중 제33주일인 오늘의 말씀은 종말과 심판을 강조합 니다. 성경은 일관되게 종말을 어둡고 두려운 이미지 안 에서 소개합니다. 대표적으로 오늘 복음 말씀이 그렇습니 다. “해는 어두워지고 달은 빛을 내지 않으며 별들은 하 늘에서 떨어지고 하늘의 세력들은 흔들릴 것이다.”(마르 13,24-25) 마치 하느님께서 만드신 창조물이 모두 사라진 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종말은 이 세상의 마지막을 지 시하기 때문입니다. 다니엘 예언서는 종말에 “어떤 이들 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어떤 이들은 수치를, 영원한 치욕 을 받으리라.”(다니 12,2)고 전합니다. 이것은 종말 때의 심 판에 관한 설명입니다. 종말에 이루어질 심판에는 중간 지대가 없습니다. 이 세상의 선과 악, 생명과 죽음, 영광 과 수치는 더 이상 공존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하는 일상 에서의 선택이 마지막으로 드러나는 때입니다. 언제일지 정확히 알지 못하는 그날을 위한 준비는 일상에서의, 오 늘의 선택에서 시작됩니다.

 

비록 우리가 그날과 그 시간을 알지 못하지만, 종말에 관한 말씀이 우리에게 항상 두려움을 자아내는 것은 아닙 니다. ‘언제’ 그런 일이 일어날지 궁금해하는 것보다 더 중 요한 것은 ‘지금’ 우리의 태도입니다. 언제인지 모르기에 지금 최선을 다하는 것이 가장 훌륭한 준비이기 때문입니 다. 지금 충실한 이들은 그날이 언제 오든지 두려워할 필 요가 없습니다. 지금 선을 선택하는 이들은 심판의 벌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런 까 닭에 종말에 관한 말씀은 미래를 걱정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의 일상을 돌아보게 합니다. 다가올 언 제가 아니라 오늘을 성찰하게 합니다. 우리의 삶은 매일 의 선택으로, 지금의 선택으로 꾸며지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한 번의 십자가 사건으로 세상을 구원하신 예 수님께서는 당신의 부활을 통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보여주셨습니다. 십자가에서의 죽음이 없는 부활은 없습 니다. 마치 예수님께 죽음이라는 고통 후에 부활의 영광 이 있었던 것처럼 우리에게 이 세상의 마지막이란 영원한 생명으로 건너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기에 종말과 심 판은 두려운 것만이 아니라 우리에게는 기쁨의 의미이기 도 합니다. 그리고 그 두려운 기쁨의 날을 깨어 기다리는 자세는 오늘을 충실히 살아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