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는 서로에게 은인입니다
이계철 라파엘 신부님(주교좌 기도 사제)
저는 작년에, 부족했던 공부를 더 하고 여러 성지를 순례할 수 있는 은총의 시간을 허락받았습니다. 그중에 한 주간을 베네딕토 성인께서 수도생활을 시작하셨던 거룩한 동굴 수도원이 있는 수비아코에서 보냈습니다. 베네딕토 성인께서는 3년 동안 수비아코 산 속의 동굴에 서 은수생활을 하던 중에 하느님을 만났고 악마와 싸웠 으며, 이후부터 악에 현혹되지 않게 되셨다고 합니다.
저는 수비아코의 중심가에 숙소를 정하고 매일 산길 을 걸어서 거룩한 동굴 수도원에 가서 기도드렸습니다. 그런데 배고픈 순례자였던 저에게 차츰 새롭게 다가왔 던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베네딕토 성인의 위대 함과 더불어, 성인께 빵을 전달하기 위해서 이 산골짜기 를 3년간 오르내렸을 로마노 수사의 선행입니다. ‘베네 딕토 성인께서는 줄에 매달려 동굴 은수처로 내려오는 빵 바구니를 보면서,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빵을 생각 하지 않았을까?’ 하고 부끄러운 공상도 하였습니다.
물론 생명의 빵은 오직 주님뿐이시지요. 거룩한 생명 의 빵인 성체에는 구유에서보다도 나자렛에서보다도 십 자가에서보다도 더 겸손하게 낮추시고 내어주시는 사랑 의 신비가 담겨 있습니다.(성 호세 마리아 에스크리바, 《길》, 533 참조) 성체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무런 권한도 능력도 없는 무생물의 지위까지 내려가셔서, 원하는 모든 이에 게 먹힘을 당하심으로써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피조물인 인간에게 당신과 똑같은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사랑의 신비가 담겨있습니다. 오늘 복음에 보면 유다인들은 이 사실을 몰랐지만,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이 진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영원한 생명의 빵이 골고루 잘 나누어져 다 함께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모두의 선한 노력이 필요합 니다. 사제도 필요하고, 봉사자도 필요하고, 빵을 먹는 사람도 필요합니다. 어느 누구도 필요하지 않은 존재는 없습니다. 따라서 내어주신 빵이 모두에게 생명이 되기 까지, 모두는 각자의 역할로 소명을 다하며 서로 일치를 이루어야 합니다.
생명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우리 각자에게까지 전달 되고 있는지를 묵상해 봅시다. 이 과정에서 어느 한 부 분이라도 단절된다면, 하느님의 자녀로서 영적 생명이 위태롭게 되고 맙니다.
빵이 전달되기까지 모든 이들의 수고는 생명을 나누 는 봉사입니다. 앞의 사람은 다음 사람을 위한 너무도 고맙고 소중한 은인입니다. 이 과정에서 그리스도 안에 일치를 이룹니다.
생명은 주님에게서 시작되고 모든 이와 연결되어 다 시 주님에게서 마칩니다. 그래서 소중하고, 그렇기 때문 에 쉼 없이 나누어야 합니다. 그래야 생명이 돌고, 그럴 때 모두가 더불어 행복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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