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자 없는 양들
겸손기도 마진우 요셉 신부님(초전성당 주임)
예수님께서는 배에서 내리시어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 같았기 때문이다. (마르 6,34)
당대에 목자가 없지 않았습니다. 즉, 회중을 영적으로 이끌 직무를 가진 이들은 넘쳐났습니다. 마을 곳곳마다 회당이 있었고 그곳에는 회당장이 있었으며 이스라엘 전역에 바리사이와 율법 학자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양들을 이끌지 않았습니다.
사람들, 특히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환호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가르치시는 바를 올바로 이해했고 이해하면 할수록 그분의 말씀에 더 목이 탔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마치 사막에서 목마름에 시달리는 사람처럼 주님의 말씀을 받아마셨고 그분이 가는 곳을 뒤따라 수고도 마다하지 않고 달려갔습니다. 육로로 시간이 걸리는 길을 빠르게 가려고 배를 타고 가는 예수님의 일행을 육로로 달려가 따라잡을 정도이니 그들의 열성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가끔 제가 있는 본당을 찾아오시는 분들에게서 제가 느끼는 바입니다. 오죽 목이 마르면 이 초전이라는 곳에 미사를 드리러 오시겠나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저는 교통비를 준다고 해도 가기 귀찮은 거리를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미사 한 대를 드리러 먼 길을 마다않고 오시는 분들을 보면 사실 감탄이 절로 나고 가엾은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그분들이 평소에 충분히 먹고 있다면 배고프지 않을 테니까요.
현대 교회는 목자가 많습니다. 그래서 가톨릭 신문 지상에 때로 사제 '면직'에 대한 기사가 올라와도 아직은 거뜬합니다. 사제는 여전히 많고 본당은 부족해서 많이들 특수사목으로 빠지고 보좌 신부가 주임이 되기에는 여전히 한참을 기다려야 하는 판입니다.
하지만 목마른 양들 같은 이들도 많습니다. 자신이 있는 신앙 환경에 실망해서 신앙에서 멀어져서 바깥에서 영혼의 위로를 갈구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성당은 나가지 않는데 사주나 점을 보러 다니는 이들은 넘쳐납니다. 요가와 명상을 신앙 대체품으로 삼는 이들도 많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우리는 예수님께 모여와야 하고 그분을 찾는 이들을 데려와야 합니다. 아니, 어쩌면 우리 스스로부터 잘 먹여야 합니다. 과연 우리는 어떤 영혼의 양식을 먹고 있을까 곰곰이 성찰해 보는 한 주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늘상 인터넷 기사와 온갖 잡다한 세상 소식을 붙들고 있으면서 왜 이렇게 내 마음이 허전할까 하는 어리석은 양들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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