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간 소통

말씀의 이삭 | 소원은 이루어진다

松竹/김철이 2024. 6. 11. 18:11

소원은 이루어진다

 

 

지난해 여름 저에게 정말 기쁜 일이 있었습니다. 살다 보 니 이런 날도 온다고 주변에 자랑하고 다녔죠. ‘반세기 무신 론자’였던 남편이 세례성사를 받고 가톨릭 신자가 된 것입 니다. 작년에 저희 부부는 결혼 25주년을 맞았는데, 무엇보 다 값진 결혼기념일 선물을 받은 셈입니다. 남편은 평소 매 우 논리적인 사람으로 종교에 대해서도 회의적이었습니다. ‘종교는 호모 사피엔스가 만들어낸 일종의 가상공동체 개 념’이라고 말하던 사람이었습니다. 말 잘하는 남편을 논쟁 으로는 이길 도리가 없었습니다. 과연 남편과 함께 성당에 가는 날이 올까, 어쩌면 인생의 황혼 무렵에는 가능하려나 하며 반은 포기한 상태였습니다. 남편을 설득하기는커녕 제 믿음조차 흔들리는 날이 더 많았습니다. 식구들 챙기기 바쁘다는 핑계로 주일미사에 빠지기 시작했고, 비틀거리 던 신앙생활은 코로나를 핑계로 더욱 냉담하게 굳어졌습니 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이 “나도 예비자 교리 받아 볼까?” 하고 물어온 겁니다. 얼마나 놀랍고 신기하고 기쁘 던지요. 제가 신실한 신앙생활의 본을 보인 것도 아니고, 성 당에 가자고 열심히 조른 것도 아닌데 말이죠. 어떻게 성당 에 나갈 결심을 했냐고 물으니, 몇 년 전 제가 ‘함께 성당에 다니는 게 소원’이라고 말했었답니다. 사실 그런 말을 했나 가물가물합니다. 큰 기대 없이 지나가는 소리로 한번 던져 본 말이었을 텐데, 남편은 염두에 두고 있었나봅니다. 평소 좋아하던 장모님의 죽음을 겪으면서 남편의 심경에도 어떤 변화가 있었나 싶기도 합니다. 아무튼 이렇게 해서 결혼 25 년 만에 소원이 이루어졌습니다.

 

세례를 받으면서 남편은 학구파답게 성경부터 읽기 시작 했고, 교리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질문을 던지곤 합니다. 그 럴 때마다 ‘사실 나도 잘 모르는데….’ 싶은 생각이 들어 뜨끔 합니다. 미사, 기도, 성경 읽기…. 무엇 하나 성실하지 않은 채 말만 신자라 자처했던 부끄러운 제 모습을 반성합니다. 남 편은 저로 인해 신자의 길에 들어섰다지만, 저는 남편의 세례 이후 하느님께 좀 더 가까워지고 신앙에 진심이 되어갑니다.

 

생각해보면 세례를 받은 이후 저는 혼자서 신앙생활을 해왔습니다. 혼자서도 굳건히 믿음을 키워가는 분들도 계 신데, 저는 무엇을 하든 혼자보다는 누군가와 함께할 때 조금 더 열심히 하게 되더라고요. 신앙생활 또한 힘이 되 어 주는 누군가가 있을 때 좀 더 충실하게 해낼 수 있음을 그동안 생각지 못했습니다. 올봄부터는 성경 공부도 시작 했습니다. 일과를 마친 저녁 시간에 과연 꾸준히 참여할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교우분들과 봉사자님, 사랑하는 동생과 함께하니 재미납니다. 아, 그리고 기쁜 소식이 하 나 더 있답니다! 남편에 이어 저희 아들도 예비자 교리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아들이 준비 과정을 잘 마치고 하느 님의 자녀로 태어나는 은총을 받길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 니다. 이제 저희 가정이 하느님 보시기에 더 좋은 가정으 로 거듭나길 바라봅니다. 그리고 저희가 받은 사랑의 선 물을 이웃들과 많이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