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간 소통

말씀의 이삭 |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는 것

松竹/김철이 2024. 6. 18. 12:40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는 것

 

 

저는 햇수로 17년째 심리 상담을 하고 있습니다. 상담 자가 하는 일은 잘 듣고 좋은 질문을 던지는 데서 시작합 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같지만 잘하기는 생각보다 어 렵습니다. 성급히 판단하는 태도를 내려놓고 공감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임하지 않으면 상담은 효과적으로 이루어 지지 않습니다. 상담자들은 공감을 제대로 하기 위해 이 론 공부와 실습 훈련을 합니다. 처음에는 공감 능력이 타 고나는 성품인 줄 알았습니다. 감수성이 풍부하고 따뜻한 사람이 공감도 잘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게 전부 가 아님을 이제는 압니다. 공감은 단지 한 순간 마음의 울 림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1970년대 20대였던 디자이너 패트리샤 무어는 시야를 흐리게 하는 안경, 귀를 틀어막은 솜, 균형 잡기 힘든 구 두를 착용한 채 살아보는 실험을 했습니다. 그렇게 4년간 100개가 넘는 나라를 다니며 노인의 삶을 직접 체험했다 고 합니다. ‘타인의 신발을 신고 걸어보라.’는 격언을 몸소 실천한 셈입니다. 그 후 그녀는 소리 나는 주전자, 양손잡 이 가위 등 누구나 불편 없이 사용할 수 있는 디자인을 고 안했습니다.

 

공감에 대해 생각할 때 저는 예수님이 떠오릅니다. 살과 뼈를 가진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가 장 낮은 곳에서 태어나 온갖 수모와 배신, 육신이 찢기는 고 통을 견디시고 십자가 죽음을 받아들이신 분. 감히 저는 하 느님의 깊은 뜻을 다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아버지, 아버지께서 원하시면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 오.”(루카 22,42)라고 하셨던 예수님의 기도를 통해 인간의 몸 으로 겪으셨을 두려움과 고통을 조금은 상상해 볼 수 있습 니다. 어쩌면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 로 우리를 향한 사랑을 보여주신 게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매일 하느님 뜻을 어기며 멋대로 살아가고, 하지 말라는 짓을 하고, 자꾸 멀어져도 하느님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 십니다. 그분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하느님 말씀을 따라 사는 것,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한다면 상대가 그 마음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사랑을 보여 줄 수 있는, 제가 아는 좋은 방법은 공감입니다.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공감받을 때 얼어붙었던 마음이 녹고 상처가 아 물기 시작합니다. 공감이 어렵게 느껴질 땐 일단 궁금해하 는 마음부터 시작합니다. 상담할 때도 몇 번의 만남이 거듭 되면서 그의 고통이 어떻게 만들어져 왔는지 이해하게 됩 니다. 깊이 알게 되면 그 사람에게 애정이 생깁니다.

 

저는 상담이라는 귀한 일을 하게 부르신 하느님께 늘 감사드립니다. 한 사람을 알아가고, 그의 세계를 이해하 게 되는 건 참 놀랍고 아름다운 일입니다. 물론 제가 아 무리 노력해도 타인의 마음에 공감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연결되고자 할 때, 그 마음 자체는 가닿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