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간 소통

말씀의 이삭 | 나만의 안전기지

松竹/김철이 2024. 6. 4. 12:40

나만의 안전기지

 

 

저는 상담심리사입니다. 누구나 살면서 여러 어려움들 을 겪고, 때로는 혼자 이겨내기 힘들다고 느끼기도 합니 다. 그럴 때 누군가와 이야기 나누기 위해 찾아오시는 분 들을 제가 맞이합니다. 상담실에 오시는 분들은 환경도, 직업도, 연령도 다양합니다. 만나는 분들이 모두 귀한 인 연이지만, 몇 년 전 뵈었던 한 분은 짧은 만남이었음에도 종종 생각나곤 합니다. 당시 그분은 어찌하기 힘든 현실 의 어려움으로 고통받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고단했던 사 연과 달리 그분 얼굴은 제 기억 속에 평온한 느낌으로 남 아있습니다. 상담을 하던 무렵 우연히 발견한 ‘기쁨’에 대 해 얼마나 행복하게 말씀하시던지요. 집 근처에서 오가 며 늘 지나치던 성당에 문득 들어가 보고 싶은 마음이 드 셨다는데요, 한번 들어가볼까 망설이기를 몇 차례, 마침 내 용기를 내어 성당 문턱을 넘으셨답니다. 아무도 없는 성 전에 들어가 앉아있는데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으며 그렇 게 편안할 수가 없었답니다. 그 후 그분은 일과를 마치고 퇴근할 때 종종 성당에 가서 앉았다 온다고 하셨습니다.

 

상담에서 활용하는 방법 중에 ‘나만의 안전기지’ 떠올리기 가 있습니다. 이 기법은 마음이 불안하거나 우울할 때, 또는 과거의 상처 때문에 괴로울 때 떠올릴 수 있는 안전한 장소를 정해두는 것입니다. 이렇게 정한 ‘나만의 안전기지’는 마음이 편안해지고,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으며, 안전한 느낌을 주 는 곳입니다. 어린 시절 추억이 깃든 집 마당이나, 나무가 많 은 공원, 잔잔한 호숫가를 떠올리는 분도 계십니다. 가급적 냄새와 소리 등의 감각을 함께 떠올릴 수 있는, 직접 가본 곳 이 더 좋겠습니다. 조용히 눈을 감고 그곳에 있다고 상상해 봅니다. 어떤 냄새가 나고, 무슨 소리가 들려오는지, 피부에 닿는 공기의 느낌은 어떤지 구체적으로 떠올려 봅니다. 복잡 한 생각과 고민을 잠시 내려놓고 그곳에 있는 것처럼 상상해 봅니다. 더불어 몸의 긴장을 풀고 천천히 심호흡을 합니다.

 

저의 안전기지는 성당의 대성전입니다. 제단의 십자가, 이콘 속 예수님과 성모님, 일렁이는 촛불, 스테인드글라 스를 통해 들어오는 빛, 파이프오르간 소리가 어우러져 성 당의 느낌을 만들어냅니다. 성전에 앉아 있는 상상을 하면 조용히 안겨있는 기분이 듭니다. 아이들이 자라 청소년이 되고, 어른이 되어 세상으로 나아갈 때 부모의 역할은 자 녀의 안전기지가 되어주는 것입니다. 험한 세상에 던져진 아이는 때론 지치기도,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그럴 때면 다시 안전기지로 돌아와 상처를 치유하고 따뜻한 음식을 먹으며 위로받습니다. 그렇게 에너지를 충전해서 다시 세 상으로 나아갑니다. 어른이 되고 중년을 넘어도 우리는 여 전히 흔들리고 고통받습니다. 누구나 자기만의 십자가를 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겐 세상 어디보다 든 든한 안전기지가 있습니다. 늘 우리를 기다리시고 지켜보 시는 뒷배, 가장 든든한 빽, 하느님이 계시니까요.

 

앞서 말씀드린, 상담실에서 만났던 자매님도 성당에서 그 분만의 안전기지를 발견하셨던 게 아닐까 짐작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