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총 주님 은총 꽉 잡고 함께 걸어요
나는 한때 주일 미사만 꼬박꼬박 나오던 발바 닥 신자였다. 어느 날 성당 자매님이 레지오 마리 애에 가입해 보지 않겠느냐는 말을 건네 왔다. 소 싯적에 청년 레지오를 했던 적이 있어서 레지오가 낯설지 않았고, 하느님께서 이렇게 나를 또 가까 이 두시려 하나 보다 생각했다. 레지오 마리애에 서 활동하다 보니 낯설었던 형제자매님들이 하나 둘 익숙한 얼굴이 되어갔다. 심심치 않게 여러 단 체에서 가입 권유도 받았고 봉사라는 이름으로 성 당에서의 활동 범위가 넓혀졌다.
권유였지만 결국엔 나의 선택이었고 후회하기 에 앞서 일단 부닥쳐 보기로 했는데, 공동체 안에 서의 봉사는 때론 버겁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나 를 하고 있으면 다른 하나가 보태지는 식이였고, 가족들에게까지 강요로 이어지는 일이 있었고, 봉 사가 마치 해야 하는 일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가 끔은 하기 싫어도 했고, 그렇다고 항상 좋은 소리 만 들었던 것도 아니다. 때론 내가 왜 이걸 하겠다 고 해서 이 고생인지 모르겠다고 자책했던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고, 권유를 받았던 모든 순간과 권유한 형제자매님까지 원망의 대상이 되곤 했다. 자신만의 자책으로 끝났다면 좋았겠지만, 궁극엔 하느님을 원망하기도 했다. 왜 하느님을 믿고 따 르는 일이 이토록 삶을 버겁게 하는 거냐고.
과연 하느님은 시련만 주셨을까. 고통 속에서 살아가라고 이런 힘든 시간을 겪게 하시는 걸까. 자신의 십자가려니 하고 묵묵히 걸어가기만 하면 되는 걸까. 어느 날 성체조배를 하다가 문득 마음 속에서 울리는 소리를 들었다. ‘너는 이 모든 일에 고통을 보지만 나는 단단해져가는 너를 보고 있 다’라고. 하느님께서 주시는 은총을 고통으로 바 라보고 있었던 것은 아닐지 생각했다. 봉사는 하 느님께서 주시는 축복과 다름이 없음을.
단체에 소속되어 봉사함으로써 신앙의 끈을 놓 지 않을 수 있었고, 이웃과의 관계를 넓혀 갈 수 있었고, 누군가가 나에게 고생한다고, 애쓴다고 웃으며 말을 걸어올 땐 나도 어딘가에 쓸모가 있 구나 싶어 뿌듯했다. 나 자신을 성당의 필요한 곳 에 두었을 뿐인데, 일어났던 모든 기적 안에 하느 님의 은총과 축복이 있었다. 하느님이 머무는 곳 은 한 곳이든 두 곳이든 개의치 않고 주어진 봉사 를 해나가는 곳에 있었지, 불평하는 마음에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시간이었다.
누군가는 성당 청소를 하고, 주보를 접고, 전례 를 담당하고, 성가로 아름다운 목소리를 전하고, 음식을 손수 만들어 나눈다. 귀한 시간을 어린 신 자들을 위해 할애하는 청년들의 마음에도 하느님 의 은총이 있었고, 성당을 자기 집처럼 깨끗하게 하고 낭비되는 것 없이 아끼려는 마음에도 하느님 의 은총이 있었다. 성당 공동체를 풍요롭고, 근사 하게 만드는 건 그 작은 마음들이 모여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며 체험하는 데에 있는지도 모른다.
성탄 대축일에 우리 본당에서는 미사 중에 세례 성사가 있었다. 더없이 기쁜 날에 기쁜 설렘을 갖 고 새로 태어난 새 신자들을 보며 하느님이 보내 는 은총을 꽉 잡고 단단하게 신앙생활을 해나가시 기를 기도했다. 더불어 나를 위해서도 기도했다. 주변에 신앙생활 기준을 주일 미사를 참석했는지 아닌지로 하고 계신 분들에게 언젠가 단체 가입을 권유했던 자매님처럼 용기 내 “봉사 같이해요.” 라 고 전할 수 있는 용기를 달라고. “함께 주님 은총 꽉 잡고 걸어요.”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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