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의 공간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 겸손기도 마진우 요셉 신부님(초전성당 주임)

松竹/김철이 2024. 1. 21. 09:10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겸손기도 마진우 요셉 신부님(초전성당 주임)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은 뱃속에서부터 친교를 맺어온 사이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이셨지만 또한 사람으로서 사람이 느끼는 것을 함께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이 잡혔다는 소식, 즉 하느님의 사명을 수행하는 이가 박해를 당한다는 소식은 예수님에게 인간적 감정의 충격을 가져왔을 것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슬픔이나 좌절에 묻혀 계시지 않았고 오히려 이 소식을 당신의 사명을 적극적으로 이행하는 훌륭한 계기로 삼았습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충격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여러가지 의미의 충격들이 다가옵니다. 소중한 사람을 잃을 수도 있고, 하던 일이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신앙인은 영원 안에 희망을 간직한 사람이고 자신의 남은 여정을 계속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세례자 요한의 체포 이후에 오히려 복음 선포를 수행합니다. 선포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예수님은 때가 찼다고 표현을 하십니다. 우리는 시간이라는 것을 어떤 순간이 다가오는 것으로 간주하지만 하느님은 시간이라는 것에 대한 관념이 우리와 다릅니다. 우리는 한계가 있는 사람으로서 우리가 가진 시간을 쪼개어 계산하지만 하느님은 한 존재의 시간이 차오르는 것으로 계산합니다. 이런 유형의 표현은 성경에 자주 나옵니다. 대표적인 것으로 므네므네 트켈 파르신이라는 표현 속에서 임금의 무게가 모자랐다는 표현도 유사한 내용입니다. 예수님의 공생활의 시작으로 하느님의 나라는 본격적으로 다가오게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은 바로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나라는 특정한 땅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통치권'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 동안 이 지상에서는 하느님의 통치권이 제대로 선포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도래로 인해서 하느님께서 다스리시는 시간이 아주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이런 선포는 우리의 '회개'와 '신앙'을 요구합니다. 지금까지는 하느님의 선포를 듣지 못했고 이해하지 못했기에 미숙함 속에서 살아왔던 우리들이지만 이제는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것을 알았으니 방향을 돌려야 하고(회개) 하느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야 합니다(신앙).

 

여기에는 '복음'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복음은 기쁜 소식으로 사실 많은 이들에게는 복음은 여전히 복음이 아닙니다. 솔직히 십자가를 지라는 말을 누가 기뻐하겠습니까? 그러나 참된 신앙을 배워 나가고 이해하는 사람은 이 십자가의 초대의 본질을 파악하고 영원하신 분의 초대에 기꺼이 응답해서 십자가의 복음을 기꺼이 수용하는 이들이 생겨나게 됩니다.

 

그 결과가 이후에 이어지는 복음의 내용입니다. 구도는 확실합니다. 세상의 생존을 상징하는 그물과 영원한 생명을 상징하는 예수님 사이에 제자들은 선택을 하도록 초대를 받고 그들은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기꺼이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릅니다. 나아가 다른 제자들도 인간 관계를 상징하는 아버지와 세상의 필요를 상징하는 삯꾼들과 세상의 목숨을 상징하는 배를 버려두고 예수님을 선택합니다. 즉, 십자가의 복음에 응답하는 이들이 생겨나게 됩니다.

 

우리에게 기쁜 소식은 무엇일까요? 배를 더 키워 주겠다거나 삯꾼을 더 늘려 주겠다는 것이 행여 더 복음처럼 느껴지지는 않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참된 복음은 희생을 예비하고 있고 오늘 복음은 그 시작점에서부터 세례자 요한의 체포를 그 예시로 보여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