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가정-말씀에 순명하는 삶
배인호 베드로 신부님(함창 본당 주임)
30년 전 아버지는 위암 말기 판정을 받으시고 1년여의 투병 생활 끝에 하느님 곁으로 떠나셨습니다. 그 사이 아버지의 병수발은 온전히 어머니 몫이었고, 당시 신 학생이었던 저는 어머니를 위로할 뿐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이웃들에게는 그저 사람 좋은 분으로 인 정받으셨으나 집안에서는 조금은 무책임하고 무능한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더욱 큰 책임감으로 집안 살림을 도맡으셨고 우리들을 키우기 위해 억 척같이 사셔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가 조금은 더 홀가분한 마음으로 사시길 바랐는데, 아버지의 부재는 오히려 어머니를 더 힘들고 외롭게 하였습니다. 곁에 있으며 함께 함이 서로에게는 세상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었음을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야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생각해 보니 신앙만을 믿고 의지하고 살아온 어머니에게는 제가 신학교를 가게 된 사실보다 아버지가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이 더 큰 기쁨이었습니다. 어 머니는 아버지와 함께 성당을 나갈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좋으셨고, 평생 혼자 신앙생활을 하시면서 겪어야 했던 외로움을 넘어 이젠 제대로 된 성가정을 꾸릴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에 행복해하셨습니다. 신학생 아들에 남편과 함께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으니, ‘이보다 더 큰 인생의 기쁨이 어디에 또 있을까?’ 싶은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 아버지의 위암 말기 소식은 어머니에게 혹독한 시련이었습니다. 어렵게 이룬 성가정이었는데...
어머니는 평생을 살아오시면서 식구들과 함께 하 느님을 믿고 성가정을 이루어 사는 것이 가장 큰 바 람이었고, 몇 년이었지만 그 바람대로 사시다가 아 버지를 먼저 떠나보내셨습니다. 후에 저의 사제관에서 밥을 해주시고 함께 지내시다가 당신도 결국 병으로 아버지 곁으로 가셨습니다. 이제 두 분이 하느님 곁에서 성가정의 부부로 아들, 딸들을 지켜보고 계실 것입니다.
성가정 축일을 맞아 지나온 시간 속의 어머니에 대한 제 기억을 되짚어 보았습니다.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마리아와 요셉은 천사 가브리엘의 전언에 따라 부부로 맺어졌고, 오로지 하느님의 말씀과 성령으로 예수님을 맞아들였고, 예수님을 통해 이루어질 하느님의 뜻을 기다리며 살아오신 분들입니다. 감히 이루어질 수 없는 관계가 말씀에 대한 순명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니 말씀만이 희망이었고, 예수님과 함께하는 시간은 하 느님의 말씀이 현실이 되는 기다림의 시간이었습니다. 아기 예수님의 성전 봉헌에서 시메온의 예언 후에 “아기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기를 두고 하는 이 말에 놀라워하였다.”(루카 2, 33)
어머니 마리아와 아버지 요셉은 오로지 예수님을 지켜주고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는 것이 삶의 목 적이었습니다. 인간의 욕심이나 인간적인 생각에 의해 하느님의 뜻이 훼손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지켜주고 존중하고 믿어주는 가운데 예수님은 무럭무럭 자라났고 때가 되어 하느님의 뜻을 이루려 출가하였으니, 그 뜻이 이루어짐은 하느님의 일이심과 동시에 어머니 마리아와 아버지 요셉의 오 롯한 정성과 기도의 힘이기도 한 것입니다.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은 이렇게 이루어진 것 입니다. 하느님의 말씀과 그 말씀에 대한 순명, 순명 안에서 이루어진 부부의 연, 서로를 의지하고 믿어주며 존중해주는 관계가 우리가 바라고 닮고 싶은 성가정의 모습입니다.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을 지내며, 하느님의 뜻이 모든 가정을 통해 이루어지길 기도합니다.
아기 예수님의 축복이 모든 가정에 충만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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