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실한 소작인
한영기 바오로 신부님(성 라자로 마을 원장)
성 라자로 마을에서 생활한 지 8년이 됩니다. 부임하고 처음에 어색하게 만났던 마을 어르신들과 이제는 너무나 편해져 깔깔 웃으며 농담도 하고 방에 찾아가 과일도 얻어먹곤 합니다. 이런 인연 속에 가장 마음 아플 때가 바로 이별의 시간인데, 그 이별은 바로 ‘선종’입니다.
인생을 한센 질병의 고통으로 인해 가혹하고 혹독하게 ‘골고타 언덕을 오르셨던’ 우리 마을 가족들은, 세상의 편견과 냉대 속에서도 신앙을 간직한 채 십자가의 예수님과 성모님께 끊임없이 기도드렸습니다. 그리고 ‘죽음’을 마주한 마지막 순간에도 오히려 담담하게 ‘이제 천국을 기다리니 행복하다.’라는 말씀을 하시곤 했습니다.
죽음을 앞두신 분께 사죄경을 외우고 성유를 바르고 안수를 드리면서도 ‘이분들에게 무슨 죄가 있을까, 부족한 내가 드리는 축복이 평생을 고통받고 십자가의 길을 걸으신, 이제 곧 주님을 뵐 이분들에게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제 자신이 더욱 부끄럽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며칠 전 선종하신 사무엘 형제도 종양으로 많은 고생을 하셨습니다. 인사드리러 갈 때마다 ‘83년이면 충분히 살았다. 잘 살다가 주님께 가는 것.’이라며 웃으던 그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습니다. 그러한 어르신들의 삶을 곁에서 지켜보는 것은 그 자체가 피정이고 묵상이며 성체조배입니다. 수녀님들과 직원들은 부모님 모시듯 지극정성으로 그들에게 헌신하십니다. 수녀님과 직원들에게 감사 인사드리면, 당연한 피정비이자 수업료라 생각한다고 답하십니다.
“차라리 없어져 버려라, 내가 태어난 날! 어찌하여 내가 태중에서 죽지 않았던가?”(욥기 3장)라고 한탄하며 원망을 쏟아놓았던 구약성경의 의로운 욥에게서 오히려 숭고하고 진실한 신앙을 보듯이, 하느님께 원망을 털어놓아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질곡의 삶을 견뎌오신 우리 마을 가족들은 오히려 오늘도 성무일도와 묵주기도를 바치며 감사의 시편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 안에서 포도원에서 일하는 소작인들은 정말 인자하고 후한 포도원 주인에게 감사는커녕 은혜를 원수로 갚는 불의한 행동을 합니다. 심지어 ‘내 아들이야 존중해주겠지.’ 하며 보낸 주인의 외아들마저 ‘자! 저자가 상속자다. 저 아들을 죽이고 우리가 모든 것을 다 차지하자.’라고 외치며 살해하는 돌이킬 수 없는 죄악을 저지르는 모습을 보며, 우리의 모습은 어떤지 한번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포도밭의 주인이신 주님께로부터 정말 많은 것을 받았고, 그만큼 감사할 것이 넘칩니다. 우리 마을 가족들은 몸도 성하지 않고 병의 후유증으로 너무나 큰 아픔을 겪고 있는데도 포도원 주인이신 주님께 항상 감사드리고, 때때로 불우이웃 돕기성금을 사무실로 가져오기도 하십니다. 그런데, 누가 봐도 더 많은 것을 받은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혹시 인자하신 포도밭 주인에게 아직도 부족하다고, 더 달라고 대들며 주인의 몫까지 자신의 것으로 삼고 싶어 하지는 않습니까?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너희에게서 하느님의 나라를 빼앗아 그 소출을 잘 내는 이들에게 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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