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말씀대로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윤원진 비안네 신부님
아무리 애를 쓰고 노력을 해도 도무지 되지 않는 일이 있다.
이런 일을 눈 앞에 놓고 있노라면 '포기하는 것이 그분의 뜻일까'라는 생각도 든다. 내가 분수에 넘치는 욕심을 부리는 것인지, 바라서는 안될 것에 손을 뻗치는 것인지, 나의 능력을 넘어서는 것을 원하는 교만함인지, 무언가 좋은 방법이 있는데 내가 그것을 알지 못하는 것인지... 별별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시몬이 “스승님, 저희가 밤새도록 애썼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스승님의 말씀대로 제가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이스라엘에서는 고기잡이를 밤에 하였다. 마치 오징어잡이를 밤새 하듯 말이다. 시몬은 밤새도록 고기를 잡으려 애썼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는 허탕을 친 것이다. 그러나 그는 고기잡이에 잔뼈가 굵은 전문가로 자부하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왠일인지 너무도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았고 무엇이 문제인지 조차 알 수 없었다.
시몬의 '허탕 치는 느낌'은 우리 안에도 있을 수 있다. 계속 기도를 해도 도무지 달라지는 것이 없을 때, 노력을 하고 애써보지만 방법이 잘못된 것인지 목표설정이 높았던 것인지 좀처럼 결과가 나오지 않을 때, 스스로의 부족한 점을 고치려고 마음을 다잡았지만 어느새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을 때...
“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
이렇게 지치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에게 그분께서는 '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내려 고기를 잡아라'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을 들은 시몬은 기가 막혔을 것이다. 밤새 일하고 온 사람에게 다시 출근하라는 말처럼 들렸을 것이고, 밤새 공부하고 쉬려는 사람에게 다시 책을 펴라는 소리였다.
시몬의 눈에 그분은 '고기잡이'라고는 해 본 적도 없는 사람처럼 보였을 것이고, 자신은 오랜 시간 동안 고기잡이를 직업으로 삼아온 전문가라고 큰소리 치고 싶었을 것이다. 만일 어느 신자가 나에게 '미사는 그렇게 드리는 게 아닙니다, 강론은 이렇게 하는 겁니다'라고 말한다면 나는 속으로 욕하거나 '내가 더 잘 안다'라고 인상을 찌푸렸을 것이다.
그러나 시몬은 자신보다 훨씬 어려 보이는 사람을 '스승님'이라 부른다. '삼인행필유아사'(三人行必有我師)라고 논어에서 말하는 것처럼 세 사람이 있으면 자신보다 나은 사람에게 배우고, 못한 사람은 반면교사로 삼아 나는 그렇게 안하면 되는 것이다. 어린 아이에게서도 배울 점은 분명 있을 테니 말이다.
그렇게 하자 그들은 그물이 찢어질 만큼 매우 많은 물고기를 잡게 되었다.
그리고 시몬은 그물을 내렸다. 낚시 초짜로 보이는 사람의 말을 듣는 프로 낚시꾼이었다. 그리고는 '그물이 찢어질 만큼' 많은 고기를 잡게 되었다. 나는 정말이지 남의 말을 잘 듣지 않는 사람이다. '내 몸은 내가 잘 안다'며 의사의 말도 듣지 않고,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한다'며 친구와 의논하는 법도 거의 없다. '엄마가 몰라서 그래'라고 말하며 부모의 충고는 물리치고, 때로 성경의 말씀은 '오래된 옛날 이야기라서 현실에는 맞지 않다'고 생각해버릴 때도 있다.
어차피 모든 사람의 말이 예언자의 예언일 수는 없으므로 누구의 말을 얼만큼 들어야할지는 내가 스스로 판단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시몬은 그 판단을 아주 잘했다. 고기를 많이 낚은 것 뿐 아니라 인생이 바뀌는 체험을 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들은 배를 저어다 뭍에 대어 놓은 다음,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남의 말을 모두 들을 생각이 없다. 내 안에 떠오르는 생각들이 모두 그분의 메세지가 아닌 것처럼 사람들의 모든 말에서 일리를 찾으며 휘둘리기 싫은 까닭이다. 그러나 그들의 말 속에 담긴 가능성을 배제하지도 않아야겠다. 그들을 통해 그분께서 내게 말씀하시는지도 모르니 말이다.
나에게도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명령을 하셨으면 좋겠다. 어떤 일은 포기하라고 하셨으면 좋겠고, 이 일은 계속하라고 말씀하셨으면 좋겠다. 그러나 과연 예수님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다면 나는 그 말씀을 들을까. 어차피 답은 내 안에서 이미 정해져 있는데 말이다. 나는 듣고 싶은 말을 내 안에 정해주었다. 그분께도 '나는 정했으니 당신이 나를 따라오시오'라며 기도라는 이름으로 겁박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내일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싶습니다.
나의 경험과 원칙을 내려두고
아무 답도 정해두지 않은 채로 당신의 뜻을 찾게 하소서.
'사제의 공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윤원진 비안네 신부님 (0) | 2021.09.04 |
---|---|
신랑이 함께 있는 동안 단식할 수 없지 않느냐|윤원진 비안네 신부님 (0) | 2021.09.03 |
나는 그 일을 하도록 파견된 것이다|윤원진 비안네 신부님 (0) | 2021.09.01 |
잃을 것이 없는 분|겸손기도 마진우 신부님 (0) | 2021.08.31 |
가난 = 행복?|함상혁 신부님(제1대리구 공도본당 주임) (0) | 2021.08.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