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 일을 하도록 파견된 것이다
윤원진 비안네 신부님
우리 모두는 세상에 파견되었다. 도대체 무슨 목적으로 파견된 것일까. 이 세상에서 무슨 일을 하라고 내게 이 삶이 주어진 것일까.
너무도 장엄하고 규모가 큰 질문이라 범위를 좁혀 구체적으로 생각해보기로 했다. 나는 파티마병원에 파견되었다. 무엇을 위해 파견된 것일까. 예수님께서는 '그 일'을 하도록 파견된 것이라고 하셨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도록 파견된 것이다
이 병원에서 나는 어떤 '일을 하도록' 파견된 것일까. 나는 의사가 아니라서 환자를 치료하지 못한다. 행정가도 아니라서 병원의 경영도 알지 못한다. 오히려 의사도, 관리자도 할 수 없는 어떤 일을 하도록 파견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주어진 '그 일'이 있으리라. 그 일은 예수님께서 시몬의 장모를 시달리게 했던 '열을 가시게 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가까이 가시어 열을 꾸짖으시니 열이 가셨다.
예수님께서는 '열'을 꾸짖으시지 열이 오른 사람을 꾸짖지 않으신다. 나 역시도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그 사람이 시달리고 있는 열을 가시게 하는 일을 하고 싶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처럼 그 사람의 행동들 몇 가지 때문에 그 사람 전체에 낙인을 찍지 않고 싶다. 가장 힘든 사람은 그 단점을 알면서도 고치지 못하는 그 사람 본인일지도 모른다. 만일 단점을 알지도 못한다면 그 사람이야 말로 가장 불쌍한 사람이다.
시몬의 장모가 심한 열에 시달리고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마귀들이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하고 소리지를 때 꾸짖으셨다. 베드로 사도는 그분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 고백하고 하늘나라의 열쇠를 받았는데 말이다. 어쩌면 아직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알려질 때가 아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분은 신성모독, 즉 자신을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선전한다는 죄목으로 돌아가셨기때문에 마을들을 돌며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서는 당신의 신분을 감출 시간이 필요했던 것일까.
혹은 베드로 사도는 사람들 앞에서 고백하지 않았고 마귀들은 사람들이 있는데서 소리 질렀기 때문에 그 의도가 달랐을 수도 있겠다. 베드로 사도는 진심에서 우러나온 신앙의 표현이었고 마귀들은 예수님의 활동을 중단시키려는 다분히 사악한 의도가 있었으리라. 또한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해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하셨을 뿐 하느님의 아드님이라 불리며 영광의 왕으로 군림하려 하시지는 않았다.
마귀들도 많은 사람에게서 나가며,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하고 소리 질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꾸짖으시며 그들이 말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셨다.
그렇다면 나 역시도 나에게 맡겨진 '그 일'로 인해 칭찬받으려 하지 않아야겠다. '왼 손이 하는 일을 오른 손이 모르게 하라'고 하셨고, '네가 사람들에게서 칭찬을 받으면 하느님께 받을 몫이 없다'고 하신 그분의 말씀을 따르고 싶다. 아무도 내가 하는 일에 격려와 공감을 해주지 않는 일이라 해도, '당신은 훌륭한 신부님이십니다'라고 누군가 말한다 해도 '그들이 말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며' 내가 교만의 '열'에 시달리지 않게 되기를 청해본다.
군중이 자기들을 떠나지 말아 주십사고 붙들었으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다른 고을에도 전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도록 파견된 것이다.”
나는 여전히 내가 왜 세상에 파견되었는지 알지 못한다. 이 병원에 파견된 이유도 그저 짐작만 하고 있을 따름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칭찬받고 유명해지기 위해 파견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또한 그분처럼 파견직일 뿐 상주직원이 아니므로 분명히 떠나야할 때가 올 것이다. 마치 언젠가 이 세상에서의 파견을 끝내고 돌아가야하는 것처럼...
내일은 제가 왜 이곳에 파견되었는지 깨닫게 해주십시오.
부디 사람들의 칭찬과 인정받는 일만을 찾지 않게 하시고
열이 내린 시몬의 장모처럼 당신의 시중을 들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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