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의 공간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정호 빈첸시오 신부님(부산교구 괴정성당 주임)

松竹/김철이 2021. 1. 12. 09:40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부산교구 괴정성당 주임)

 

 

주님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에 대해 생각해봅시다. 사실 우리에겐 이 두 가지 시선이 무의미 합니다. 우리는 주님이 성자이신 하느님이시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보는 예수님의 모든 것은 하느님의 뜻이 우리 안에서 일어난 것임을 알고 놓친 의미는 없는지 살피는데 집중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우리에게도 주님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두 가지 시선은 우리에게 쌓여있는 편견 하나를 지워내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주님을 바라보는 시선 중 하나는 사람들이 전혀 알리 없었던 예수님에 대한 시선이고, 또 하나는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으로 주님을 바라보는 시선입니다. 예수님의 정체를 알게 되는 것은 처음 몰랐던 예수님의 진실과 진리가 드러난 사건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을 일으킨 것은 놀랍게도 더러운 영, 곧 악마였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악마는 주님의 맞은 편에서 주님의 일을 방해하고 거짓을 말하며 우리를 죄로 인도하는 나쁜 존재입니다. 그런데 복음 곳곳에 등장하는 악마의 모습 속에서, 특별히 주님 앞에서는 그런 악마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오히려 그들은 그 때마다 주님을 아는척하고 우리가 지금 고백하는 예수님의 정체를 이야기합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악마는 예수님의 정체를 거짓 없이 알립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자신들을 멸망시킬 수 있는 분이라 하기도 합니다. 처음 주님의 이야기에 이유를 알 수 없는 권위를 느낀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말씀은 그 말씀으로 울림을 가졌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은 주님이 누구신지 보다 그 말씀의 깊이와 자신들의 머리와 삶을 생각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누구신지 몰랐을 때 사람들은 하느님의 뜻에 더 가깝게 접근합니다. 

 

그러나 그런 변화를 깨뜨린 것은 악마에 사로잡힌 이의 외침이었습니다.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주님을 고백하며 외친 이의 이야기는 삽시간에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생각을 예수님께 주목시켰습니다. 이 때부터 주님을 바라보는 시선은 이유 모를 권위의 말씀이 아닌 능력과 권세를 지니신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 됩니다. 

 

그리고 그분을 증언한 악마는 정말 그 사람을 뒤흔들어 놓고 나가버립니다. 정화는 이루어졌고 하느님의 힘이 느껴지는 장면이 드러났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놀랐고 모든 관심사는 주님께 쏠립니다. 그분은 정말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 알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만약 이것이 악마의 의도된 시나리오라면 어떨까요? 굳이 숨겨져 있던 예수님의 정체를 드러낸 악마의 외침과 쫓겨나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 악마는 이 한편의 연극을 통해 사람들의 생각과 변화를 통제합니다. 사람들의 마음의 변화와 삶의 변화는 멈춰버리고 이 일은 능력자 한 분을 보는 것으로 그쳐버립니다. 그리고 주님은 우리와 다른 분. 그래서 그분은 우리 안에 계셔도 원래 다를 수밖에 없는 분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사람들의 생각은 오직 그분만 하실 수 있는 일로 여기게 되고 악마에게서 벗어난 이도 그들의 눈요기거리가 됩니다. 주님이 그들에게 전하신 말씀은 절대자 한 분의 능력과 위대함에 잊혀져 버리고 오직 주님만이 그들에게 남습니다. 주님이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셔서 가르치신 이유는 당신과 백성들 모두가 하느님 아버지의 말씀 안에 머무르고 살아가게 하시기 위함이었으나 사람들이 예수님을 알게 된 후로는 오직 그분만 찾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어 버립니다. 

 

 

악마는 우리보다 머리가 좋습니다. 그리고 그의 시도는 지금도 세상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듯 보입니다. 사람들은 위인들을 기다리고 그들이 세상을 좋게 만들거라고 여기니 말입니다. 그러나 무수한 지도자들이 실패하는 이유는 백성들 모두가 바른 생각과 바른 삶으로 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믿지만 제대로 살지 않으면서 하느님의 구원만 바라보는 삶. 기도는 하지만 삶은 없는. 그리고 자신은 나약하고 어리석다고만 겸손을 표시하는 것은 주님의 위대하심이 커질 수록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이 시기가 좋아지는 방법은 능력있는 지도자, 백신이나 치료제를 개발하는 유능한 개발자보다 이 상황을 함께 걱정하고 각자가 해야 할 일을 충실히 지키는 노력임을 압니다. 그러나 모두가 그렇지 못하다면 우리가 바라는 구세주에 가까운 지도자는 모두를 무력으로 굴복시키는 이 밖에 없을 겁니다. 우리가 함께 하지 않으면 좋아지지 않습니다. 세상 어느 지도자도 여기에 해법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겐 우리 마음을 흔들고 삶을 바꾸는 살아있는 권위가 필요합니다. 그 권위가 어떤 권세와 능력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기억했으면 합니다. 

 

우리에겐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 아니라 그분이 전해주시는 우리의 가치와 삶이 필요합니다. 그리스도는 이 둘을 모두 충족한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변하지 않는 그분의 거룩하심보다 변해야 할 우리의 태도를 걱정하는 것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