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체적인 만남 속에 머물러라
겸손기도 마진우 요셉 신부님
인류는 항상 '제한'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무언가를 보려고 해도 자신이 머무르고 살고 있는 곳을 벗어나기 힘들었고 듣는 정보도 항상 제한적이었지요. 누군가 들려주지 않는 이상 들을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오히려 더 '순응'이라는 것에 적합하게 살아왔습니다. 자신의 환경과 상관없는 것을 보고 듣지 않으니 자신의 삶을 보살피게 되고 그에 필요한 환경을 보살피게 될테니까요.
그러나 현대는 인간의 기본적인 범주를 벗어난 필요없는 요소들이 너무나 자주 보여지고 들려지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인터넷'은 도구일 뿐이지만 누가 그 도구를 쓰느냐에 따라서 전혀 다른 도구가 되기도 하니까요. 돈을 움직이는 이들이 '인터넷'을 도구로 쓰고 그 안에 마련되어 있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망을 기반으로 한 서비스에 손을 대기 시작하면서, 우리에게 보고 들려지는 요소들은 조작되어 다가오기 시작합니다.
여러분이 유투브에서 하나의 영상을 보고 나면 그 검색 자료는 유투브에 남아 '알고리듬'에 의해 유사한 영상이 계속 올라오게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최초 바라보았던 영상의 정보와 관계되고 유사한 것, 즉 여러분이 스스로 제공한 관심사를 바탕으로 여러분에게 선사되는 여러가지를 동시다발적으로 보게 됩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세뇌'와 '중독'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이런 상태에서는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능하게 되고 그래서 여러분을 최종적으로 중독에 따른 행동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즉, 전에는 관심없던 물건이 필요하다고 믿게 되고 그것을 구입하게 되는 것이지요. 자연스레 과소비가 뒤따르게 됩니다. 그리고 사회는 그 과소비를 부추길 수 있는 수단들을 지니고 있지요. 바로 미리 쓰고 나중에 갚는 제도입니다. 여러분의 지갑 속에 있는 신용카드입니다.
과거에는 농담이었던 사하라 사막의 부족에게 난로를 팔고, 에스키모인들에게 냉장고를 파는 것이 현실화되고 있습니다. 필요하지 않아도 필요를 만들어 내면 되니까요. 그 필요는 나의 환경에서 기인하는 자연스러운 필요가 아니라 우리에게 부추겨진 필요입니다.
절제가 훈련되지 않은 이는 이 흐름에 저항할 수 없습니다. 이는 마치 어린애와 어른의 싸움과도 같습니다. 상대의 수를 다 파악하고 체스를 두는 이는 체스판에서는 이길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애시당초 이 체스판에 뛰어들지 않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어느새 디지털화 된 우리의 삶에서 '인격적인 만남'과 '실질적인 행동'에 집중할 줄 알아야 합니다. 페이스북에서 가난한 이를 도와야 한다는 글에 눌러대는 좋아요는 절대로 그를 돕지 못합니다. 우리는 실천적인 행동의 범주 안에서, 그리고 우리가 구체적으로 만날 수 있고 할 수 있는 일들 속에서 나 자신을 형성해 가야 합니다.
지나치게 많은 일을 염려하고 살지 마십시오. 내가 실제로 할 수 있는 일 안에 머물러 살아가십시오. 가족들에게 식사도 하나 챙기지 못하면서 아프리카의 결식 아동을 도와야 한다는 글에 동의하는 건 어리석은 처신일 뿐입니다. 오늘 하루 내가 할 수 있는 말과 행동에 주목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변화시켜 가야 합니다.
마진우 요셉 신부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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