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의 공간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松竹/김철이 2020. 12. 16. 00:02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부산교구 괴정성당 주임)

 

 

대림절의 첫시기의 마지막날입니다. 우리가 기다리는 다시 오실 주님에 대해 세례자 요한의 이야기로 마무리합니다. 우리의 기다림은 언제나 한결같지만 우리에게 요한의 질문은 잊지 말아야 할 내용을 전해줍니다. 

 

 

요한은 자신의 입으로 증언한 주님을 두고 일정한 거리를 보입니다. 그리고 제자 둘을 보내어 주님께 질문을 건넵니다. 스스로 고백한 분에게 따름이 당연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고 예의를 갖추되 그분의 증언을 확실히 듣기 위해 제자들을 보냅니다.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우리에게 오실 분에 대해 요한은 "신발끈을 풀어 드릴 자격도 없다"라는 말로 표현했습니다. 우리도 잘 알고 있는 이 고백은 요한의 겸손을 드러내지만 그가 주님께 보인 태도를 보면 그도 주님을 잘 몰랐음을 보여줍니다. 사람들에게 요한은 충분히 메시아의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는 한사코 거절했습니다. 그런 그의 증언이니 주님은 좀 더 차원이 높거나 왕 정도의 권위를 지닌 분이어야 합니다. 요한에게도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일겁니다. 

 

그러나 주님은 죄인들 사이에서 그가 세례를 베풀던 물로 걸어들어오셨습니다. 요한이 거절했지만 굳이 주님은 물을 당신 머리에 끼얹게 하셨고 죄인들의 세례를 청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사람들 사이로 들어가셨습니다. 구별되지 않는 자리 구별할 수 없는 모습으로 사람들과 똑같은 삶을 사셨습니다. 

 

요한이 이런 주님의 모습을 보고 근심을 가졌음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에게 주신 주님의 대답은 당신의 삶의 모습을 그대로 전해주라는 것이었고 그것이 당신이 보여주실 증거라고 그의 걱정을 드러내십니다.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이는 행복하다."

 

 

우리가 기억하는 의심의 대표적인 인물인 토마스를 꺼내지 않아도 주님을 보고도 의심을 한 요한이었습니다. 그의 의심은 우리가 주님을 몰랐다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아직도 다시 오시는 주님에 대해 비슷한 생각들을 가집니다. 세상의 모든 권위를 누르시고 모든 것을 해결하실 분이니 우리가 생각하는 가장 강하고 능력의 하느님으로 다시 돌아오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요한과 다른 처지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미 우리와 함께 계셨던 주님을 알고 있으니 우리를 찾아오실 주님은 분명 당신이 계실 때의 가르침과 삶을 기준으로 우리를 판단하실 것임은 분명합니다. 요한은 우리에게 어떤 말을 건넬까요? 만약 지금이라면 요한은 결코 주님에게 그런 질문을 하지 않았을텐데 말입니다. 우리도 기다림의 내용이 틀리지 않았을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당장 내일부터 시작될 아기 예수님의 탄생의 이야기를 잘 기억하고 함께 해야 하겠습니다. 그 아기의 인생이 우리 주님의 모습이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