松竹♡수필

비누와 양초의 삶처럼

松竹/김철이 2020. 10. 28. 01:50

 비누와 양초의 삶처럼

 

                                                       김철이

 

 

 지금 이 시대의 전쟁은 국경을 마주하고 총칼을 맞대어 밀고 밀리는 나라와 나라 사이의 땅따먹기 전쟁이 아니라 갖은 전염병과 인간이 적이 되어 벌이는 국경 없는 전쟁이 아닌가 싶다. 당장 코앞에 벌어지는 사태만 보아도 그렇지 않은가? 이름도 선진국형인 코로나 19 발병이 어디서부터 시작이 됐는지 모를 일이지만, 숱한 세월 동안 의학 선진국 경제 대국을 자칭하며 후진국 국민을 마치 미개인 취급하며 콧대를 세워오던 나라들마저도 코로나 19라는 한낱 전염병 앞에 맥도 못 춘 채 무릎을 꿇어야 하는 실정이니 냉소를 금치 못할 일이 아닌가! 국가별 코로나 19 전염성 비율을 봐도 선진국 개화인이라 자청하던 나라들이 더욱 심각성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이다지도 심각한 사태 중에도 이 난국을 타개하기 위한 중론(衆論)을 내놓는 정상(頂上) 한 사람 없이 어느 나라 정상은 코로나 19 불똥이 자국에 튈까 봐, 꼬리 자르기에 급급하고, 어느 나라 정상은 코로나 19 발병의 책임을 군사 경제 경쟁국에 뒤집어씌우려 안달이고, 또 어느 나라 정상은 자신의 정치적 손실과 자국의 체면과 자국 경제에 미칠 영향력만 고심하며 코로나 19에 확진되어 신음하는 자국민의 아픔을 쉬쉬했다는 것이다. 국가 정상들의 생각이 이다지도 이기적이니 코로나 19 종식은커녕 코로나 19를 지구상의 토속(土俗) 전염병(傳染病)으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안타까운 일은 이러한 극단적인 이기심을 해외뿐만 아니라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이라 자부해 왔던 우리나라 내에서도 쉽사리 접할 수 있음이다. 코로나 19사태로 인해 나라 안팎이 살얼음판을 걷는 형국인 이때 누구는 행여 전염병에 전염되어 나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 피해나 주지 않을까 싶어 현관 밖 출입조차 자제하며 자중자애(自重自愛)를 일삼는 판국에 누구는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 푼다는 핑계로 방역수칙도 제대로 지키지 않으며 클럽에 모여 까만 밤을 하얗게 지새우는가 하면 동전 노래방에서 한때를 즐기려다 가족은 물론 이웃에까지 피해를 주고 또 누구는 자신들이 천하에 대한민국 애국자들인 양 대한민국 수도의 한복판에다 수만의 인파를 모아놓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니 코로나 19 비말(飛沫)들이 얌전히 있으면 더욱 이상한 일이 아닌가?

 

 요지경은 이쁜 만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의 안전과 살림살이를 걱정하며 그 어떤 경우에도 국민의 대변인 역할을 해내야 할 정치인들이 국민의 안전을 해칠지도 모를 대규모 집회 판을 벌이겠다니, 이 나라 국민은 누굴 믿고 살아야 할지 속 시원히 대답해줄 자 누군지 그의 진정성 있는 대답을 듣고 싶다. 이럴 때일수록 비누와 양초 같은 삶을 사는 이가 절로 그리워지는데 극도의 이기심이 난무하는 이즈음에도 비누와 양초의 삶을 사는 이들이 있으니 그들이 바로 코로나 19 확진자들을 위해 개인 일상을 접어둔 채 헌신적으로 본인들의 직무에 충실해 온 몇몇 의료인, 간호인 그리고 본인이 맡은 직무에 충실 하느라 머리에 서리가 내려앉는 줄도 모르는 몇몇 보건당국 관계자들이 아닌가 싶다. 덧붙이는데 이들이 바로 자신을 녹여가며 더러움을 씻어주는 비누와 전신을 불살라 어둠을 환히 밝혀주는 양초의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에게 마음을 모아 감사를 표하며 전 세계인이 일심단결 하나로 뭉쳐 개개인이 비누가 되고 양초가 된다면 코로나 19 종식의 날이 하루라도 빨리 찾아오지 않을까 하는 염원 모아 금수강산 이 땅에 옛 모습이 뿌리를 내리길 기원하며 비누와 양초로 사는 삶의 기법(技法)을 배워보기로 하자.

 

 비누는 사용할 때마다 자기 살을 물에 녹여서 점차 작아진다. 아울러 어느 순간 자신의 형체를 흔적 없이 세상에서 사라진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세상 갖은 더러움도 함께 자취를 감춘다. 만일 녹지 않고 형체를 보존하는 비누가 있다면 쓸모없고 한낱 사용(使用) 무익(無益)한 물건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양초는 불을 밝힐 때마다 자신의 몸을 불에 녹여 어둠을 밝히다 점차 녹아내리는 촛농을 남긴 채 그 형체를 잃어간다. 더불어 어느 순간 양초라는 개념을 떠올리기조차 무색할 정도로 본연의 모습을 잃어간다. 하지만 자위(自慰)를 받아도 충분한 건 양초가 불에 녹아내릴 때마다 쉽게 분해되지 않을 것 같은 어둠도 빛을 이기지 못하고 빛의 세계에 순응한다는 것이다.

 

 자기희생을 통하여 사회 구성원들 가운데 공헌할 줄 아는 이는 양질의 비누라 하겠지만, 어떻게든 자기 것을 아끼고 자신의 몸만 사리려는 이는 물에 잘 녹지 않는 저질의 비누와 같고 자가 봉사를 통하여 일류 사회에 헌신적으로 봉사할 줄 아는 이는 아무리 암흑 같은 어둠이라 하여도 능히 이겨내며 본분대로 빛을 발산하는 양질의 양초로 인정받겠지만 자기 본분조차 잊은 채 작은 틈만 보여도 호시탐탐 게으름을 피우며 나태함이 온몸에 밴 이는 불을 밝혀놓아도 어둠을 이겨내기는커녕 작은 순풍에도 쉬 흔들리며 녹아내릴수록 악취마저 발산하는 불량의 양초와 같을 것이다.

 

 누구라 할 것 없이 손해를 감수하고 희생하기를 죽기처럼 여기는 이 극단적 이기적인 사회구조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삶 중에 희생하고 봉사하는 삶만큼 숭고한 삶은 없다. 희생과 봉사를 바탕으로 일궈내는 인간관계는 아름답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다. 가족 간 가족애(家族愛), 부부간 부부애(夫婦愛)가 그렇고 청춘 남녀 간 애정(愛情)이 그렇고, 친구 간 우정(友情)이 그렇고, 동료 간 동료애(同僚愛)가 그렇고, 전우 간 전우애(戰友愛)가 그렇다. 비누와 양초처럼 나를 희생 시켜 누군가를 돋보이게 하는 삶! 언어적 표현으론 쉽지만, 누구라도 나 자신이 실천해 살아내기란 참 어려운 삶이다. 그러나 지금 이 사회 구성원 중 그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 상대를 위해 손해 보고 희생하는 삶을 살아보라 권하고 싶다. 손해 보고 희생하는 마음이 잠재돼 있지 않다면 사랑한다고 제아무리 떠들어도 참된 사랑이 아니며 손대지 않고 두들겨대는 꽹과리와 같을 것이다. 사랑받고 싶으면 사랑해야 한다. 는 말처럼 이 땅에 발을 붙이고 살아내야 할 나 자신을 사랑하고 내 부모, 내 형제, 내 자녀를 사랑한다면 나부터 솔선수범하여 비누와 양초의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자기 몸을 물에 녹여서 찌든 때를 없애주고 자기 몸을 불에 녹여 어둠을 밝혀주는 희생의 정신으로

 

 나의 자유와 나의 안전이 소중하듯이 남의 자유, 남의 안전을 나의 것인 양 동등하게 존중해주고 아껴주는 마음, 기나긴 인생길 결승점을 첫 번째로 도달하기 위해 다른 이의 생활영역을 무시하고 억누르기보다는 설사 걸음걸이 조금 더디 갈지라도 힘들어 뒤처진 이의 손을 잡아당겨 주며 함께 갈 수 있는 이, 언제나 한결같이 더러운 때 씻어 없애면서도 생색내지 않고 녹아서 작아지는 비누와 비록 초라하지만, 자신의 몸을 불사르며 어둠과 당당히 맞서는 양초처럼, 자신이 받은 것들을 기억하기보다는 자신이 늘 못다 해준 것만을 아쉬워하는 이. 그런 영혼의 소유자가 참으로 아름다운 사람이라 존중받을 것이다. 지금은 가슴속에서 꿈틀대는 개인주의 잠시 잠재워놓고 대한민국 국민 전체가 대동단결(大同團結)하여 코로나 19 종식의 날로 매진하는 아름다움을 전 세계에 보여주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