松竹♡수필

잃어버린 정(情)을 찾아서

松竹/김철이 2020. 11. 25. 01:30

잃어버린 정()을 찾아서

 

                                                                 김철이

                                                                                                 

 

 먹거리 대풍작 시대와 볼거리 대홍수 세대를 살면서도 먹는 것도 많고 보는 것도 많으니, 많은 것 품은 사람들답게 감사하는 삶의 토대 위에서 좀은 여유롭고 남에게 베풀며 사는 것이 도리인 것을 감사는커녕 걸핏하면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현대인들을 보면 측은지심(惻隱之心)이 절로 느껴진다.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에서 나눔의 문화와 경로우대(敬老優待) 사상(思想)이 실종된 지 이미 오래되었다지만, 머리를 하늘로 두고 이 시대를 사는 한 구성원으로 먼 시대를 살다 가신 조상님들께 부끄러워 고개를 들지 못할 듯하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듯 또 그렇게 겨울은 우리를 찾아오겠지만, 단 하나 수십 년 전에 우리 이웃들의 가슴속에서 이미 산송장이 되어버린 정()은 행방불명 영영 돌아오지 못할 듯싶다. 사람이 살다 보면 어찌 고른 길만 걸을 수 있는가? 하루를 걷다 보면 소도 만나고, 개도 만난다 했거늘 요사이 우리나라는 좁디좁은 닭장 속 닭싸움을 연상케 한다. 언제부터 정치(政治)에 그렇게들 관심이 많았다고 진보주의(進步主義)와 보수주의(保守主義) 둘로 나누어져 개혁을 위해 한 걸음이라도 더 앞으로 나아가려 하고 급격한 변화를 반대하고 현재 상태를 유지하며 현재에 안주하기를 원하며 병아리 복통만 한 땅덩어리 위에서 다투기에 도를 넘겨 새파란 햇병아리 정치인이 제 아비뻘 되는 노 정치인에게 입에 담지 못할 막말을 내 지르는가 하면 분 냄새 얼굴에 폴폴 풍기는 젊은 여성 정치인이 제 어미뻘 되는 노 여성 정치인의 안면에 반 욕설을 퍼붓기 예사이니 이러한 병폐(病弊)가 선()의 탈을 쓴 채 난무(亂舞)하는 건 죄다 우리네 가슴속에 정의 강이 메말라 흐르지 못하는 탓일 것이다. 진보도 좋고 보수도 좋은데 한나라, 한 국민으로 되돌아올 수 없는 배척의 강은 건너지 않기를 바라며 잃어버린 정을 찾아 옛 서민들 영혼 속 여행을 떠나려 한다.

 

 큰물도 들지 않았는데도 우리네 영혼 속 정()의 강이 한결같은 모습으로 범람했던 그 시절의 하루는 세상인심(世上人心)을 구걸하는 구수한 각설이들의 각설이 타령으로 사립문을 열었다. 가정 가장의 조반상도 들이지 않았는데 사립문 밖에선 각설이 타령이 동지섣달 칼바람에도 얼지 않고 줄줄이 늘어졌다. 보릿고개 시대는 살아보지 못했지만, 못 먹고 못 입던 시절이라 삼동초 김치 너부러진 이파리 밥술에 올렸고 시디신 묶은 김치 다디달게 먹었던 그 소박한 시절엔 선풍기 냉장고 발명을 예측하지 못했었기에 야밤 냇가에 멱 감던 일도 부채질 하나에도 감지덕지했던 그 시절 밤, 마실 이 습관처럼 온몸에 배여 저녁 밥술 놓기가 무섭게 삽짝 밖에 깔아둔 평상에 눌러앉아 젖은 풀, 마른 풀 두루 섞어 피워 극성맞은 모기떼 쫓아주던 모깃불 덕도 봤지. 더 높아진 하늘에 수를 놓듯 떠 있는 뭉게구름이라도 따볼 심사였던지 허공을 빙빙 도는 고추잠자리 실 꼬리를 쫓아 잠자리채 휘두르던 그 시절, 우리는 고추잠자리를 쫓았던 게 아니라 ()이 메마른 이 시대를 대비하여 점차 소멸할 정()을 비축해 두려고 동심은 매년 가을마다 잠자리채 가로세로 휘둘렀을 것이다.

 

 동장군 칼바람 위상의 헛된 미련이 채 물러가지도 않았건만 호된 겨우살이 사슬에서 벗어나고픈 소망이 컸던지 냉기도 가시지 않은 땅 위로 성미 급한 새싹들 고개 내미는 표정에서 봄을 직감한 동심은 고사리 같은 한 손엔 호미 들고 한 손엔 갖가지 꽃씨 한 움큼 움켜쥐고 꽃밭에 꽃씨를 심었던 게 아니라 얼마 못 가 황폐해질 정()의 텃밭에 정의 씨앗을 고랑마다 미리 심었던 것은 아닐까! 성급한 악동들 장구벌레 변신도 채 하지 않았는데 웃통을 훌렁훌렁 벗어 던진 채 덜 더워져 차갑기만 한 냇물에 뛰어들어 개헤엄 첨벙대던 그 시절, 동심은 장차 말라 흐르지 못할 정()의 냇물이 못내 아쉬워 마냥 그렇게 첨벙댔을지 모른다. 가을걷이 뒷전에서 높아만 가는 하늘을 우러러 감나무에 매달려 목을 매며 설익은 땡감 몇 알 서리하려고 발돋움했던 악동들의 철부지 행실은 몇 알의 감을 따려던 것이 아니라 머지않아 시들 정()의 나무 열매를 미리 망태기에 따 담았을지도 모른다. 동장군 호된 기세에 눌러 어른들은 벌벌 떨며 잘잘 끓는 온돌방 아랫목을 찾던지 두툼한 코트에 몸을 파묻고 자라목을 한 채 어른 된 체면은 간 곳이 없고 두 발만 동동거렸을 때 코흘리개 동심들은 혹한에 시린 손 호호 불며 대나무 작대기 하나 꺾어 작대기 끝에 질긴 나일론 끈을 묶고 나일론 끈의 끝자락에 돌멩이로 두들겨 기역 자로 구부린 작은 못을 달아 둘러메고 고래라도 낚아 올릴 기세로 얼음판으로 단숨에 달려가 진종일 코와 귀가 떨어져 나가는 듯한 고통과 아픔을 통째 참아내며 얼음판에 쪼그리고 앉아 간혹 눈먼 빙어 몇 마리, 낚아 올린다는 핑계로 이겨내기 버거운 겨울을 낚아 올렸는데 이 철없고 무모한 동심이 낚아 올렸던 것은, 한 시절 빙판에 놀다 갈 빙어가 아니라 사계의 수레바퀴처럼 번갈아 우리 곁에 머물다 갈 겨울을 낚은 것이 아니라 불과 몇십 년 뒤 멸종될 정()을 몇십 년 앞서 미리 낚아 올린 것일 태지.

 

 우리 민족이 대대로 살아왔던 삶의 뒤안길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넓지 못한 땅덩어리 위에서 아옹다옹하며 한때도 여유롭고 평온한 삶을 살아보지 못하고 늘 힘에 부치고 버겁게 살면서도 버틸 수 있었던 뿌리와 근원(根源)은 우리네 가슴에 따뜻하게 흘렀던 정()이 가로세로 흘렀던 덕분이다.

 

 

 인간은 상호관계로 묶어지는 매듭이요, 거미줄이며 그물이다. 라는 생텍쥐페리의 명언처럼 사람이라면 모름지기 정()의 매듭으로 연()을 맺어야 하고, 늘 정의 거미줄에 걸려 살아야 하며 정의 그물에 잡혀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기는 사회를 구성할 수 있고, 그러한 사회구조 안에서 나라의 새싹들이 자라야 나라의 희망이 있고, 따뜻한 가슴에서 영그는 정의 열매가 맺는 법인데 오늘날같이 인명중시사상(人命重視思想)은 실종되고 인명경시풍조(人命輕視風潮)만이 독판치는 사회구조 안에서 후세가 태어난다 한들 천하의 돌연변이가 아니곤 자기 존중과 타인의 존중을 놓고 선택하라면 단 1초 망설임 없이 자기 존중 쪽의 손을 들 자기존중사상(自己尊重思想)의 소유자가 태어나는 건 불을 보듯 뻔한 일일 것이다. 그러므로 세상과 이 나라에 먼저 태어난 인생의 선배들이 이타심(利他心)과 타인존중사상(他人尊重思想)으로 영혼을 메운 인성(人性)이 태어날 웃거름과 자양분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야 한다는 것이다.

 

 흔히 7080 세대라 불리는 시대를 살았던 이들의 가슴속에는 내남없이 따뜻한 정이 넘쳐흘렀다. 그 증거를 야박한 이 시대 사람들의 빈 가슴에 새겨주려 한다. 그 시절엔 요즈음처럼 동네마다 마트나 편의점이 생겨나지 않았던 터라 동네마다 마을마다 두루 다니며 생필품, 먹거리 등을 팔았던 거리의 행상들이 많았다. 목구멍이 포도청이었던 탓에 죄다 한 사람같이 한 가정의 생계용으로 대야를 이고 수레를 끌었을 터인데 한 푼의 돈에도 인색함이 절로 묻어나는 이 시대 사람들의 얄팍한 상술(商術)로 사람들을 대했던 것이 아니라 당장 조금은 손해를 보고 이윤이 덜 남더라도 사람 사는 냄새 물씬 풍기는 정을 팔았다는 것이다.

 

 그 가운데 숱한 발품을 팔며 하루해 동안 만나는 이들의 가슴마다 덤으로 따뜻한 정()을 팔았던 이들을 불러내 가슴에서 따뜻한 정이라곤 한 푼어치도 찾아보기 힘든 이 야박한 시대를 사는 이들의 가슴속에 살아있는 피가 흐르듯 따뜻하고 어머니 품처럼 포근한 정이 언제나 함께 머물게 해주고 싶다.

 

 그 시절 행상으로 온종일 거리를 헤매며 동심들과 말씨름했던 이들 중 나무로 만든 떡함지를 머리에 이고 이 동네 저 마을로 두루 다녔던 떡장수 아낙들이 있었는데 그들의 떡함지 속에는 송편, 붉은팥 시루떡, 쑥떡, 인절미, 개떡, 골무 떡 등이 수북이 담아져 있었다. 가사 일을 도맡아 해야 할 가정주부가 오직 해서 떡함지를 이고 거리로 나왔겠냐며 먹지 않아도 무방하고 쓰임새 별로 없는 떡을 팔아주는 한편, 이들과 끼니때에 맞닥뜨릴 양이면 어머니들은 끼니를 거르는 일이 끼니를 때우는 일보다 흔했던 이들에게 보리밥 한 술이라도 함께 나누었고 그들은 고마움의 표현으로 떡함지에서 떡 몇 개를 꺼내 덤으로 아이들의 손에 쥐여주곤 했다. 이러한 시절 모습에 동참했던 엿장수가 있었는데 나무로 짠 엿판에는 호박엿을 위시하여 쌀 엿, 보리 엿, 무 엿, 고구마엿, 옥수수엿 등 갖가지 엿을 담았고 엿판 아래 짐칸에는 신다 떨어진 고무신, 구멍 난 양은 냄비, 배우다 내팽개친 헌책 사용하다 망가진 우산 등이 수북이 실린 엿 수레를 한 손으로 밀며 한 손에 든 가위 장단에 맞춰 맛깔 나는 엿 타령으로 동심들을 불러 모았다

 “싸구려 어허허 굵은 엿, 정말 싸게 파는 엿, 맛 좋고 색깔 좋고 사월 남풍에 꾀꼬리 빛 같고 동지섣달 설한풍에 백설같이 하얀 엿, 싸구려 어허허 굵은 엿, 지름이 찍찍 흐른 엿!” 

 이 신명 나는 엿 타령에 홀린 개구쟁이들은 집안에 없는 고물도 만들어 들고나오곤 했는데 가끔 인심 후한 엿장수를 만날 양이면 맛보기라 하여 엿판의 엿을 죄다 동네 개구쟁이들을 향해 던져 주었던 덕에 개구쟁이 악동들에겐 횡재했던 날로 기억되곤 했다. 그 시절 개구쟁이들이 받았던 덤의 떡과 맛보기 엿은 한순간 입맛을 충족시킨 덤의 떡과 맛보기 엿 몇 가락이 아니라 몇 년 가지 않아 소멸할 정()을 부디 잊지 말라는 뜻의 마음일 것이다.

 

 그 가운데는 우리나라 밤의 역사를 증명할 소리가 있었다

찹쌀~~! 메밀~~!” "망개떡~! 찹쌀떡~!"

라며 주로 가정형편이 어려운 고학생들이 나무로 짠 떡함지 양옆에다 광목천으로 끈을 이어 목에 메고는 차디찬 밤 서리한 몸에 다 맞으며 혹한이 독판치는 겨울밤 골목을 누볐다. 허름한 손수건을 머리에 두르고 뼈대는 나무로 짜고 유리를 사방에 끼워 넣은 한 말들이 긴 네모 유리 상자를 제법 기다란 장대의 양 끝에 끼워 매달아 어깨에 둘러멘 망개떡 장수의 외침은 머지않아 사라질 정()을 애써 불러 모으는 온정의 종소리이었고 모래시계나 등잔이 담겨 있어야 마땅할 것 같은 유리 상자의 흔들림은 우리네 가슴에 살아 흘렀던 정()과 헤어지기 싫은 몸부림은 아니었을까. 정책논쟁으로 한 가정이 정신적 도륙을 당하고 온 나라 안이 미치광이 널판으로 전락(轉落)해 버린 이 시점에서 고래 싸움에 등 터지는 민생(民生)을 생각해서라도 진보주의자(進步主義者), 보수주의자(保守主義者) 모두가 물과 정()은 아래로만 흐른다는 상식과 개념을 뛰어넘어 진정 살아 따뜻한 정()을 실천해 주기를 빌어 마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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