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령과 병에 시달리다 낫게 된 몇몇 여자도 그들과 함께 있었는데,"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부산교구 괴정성당 주임)
묵상 듣기 : youtu.be/r3qwceBZTwQ
예수님이 가시는 길은 이스라엘의 고을과 마을들이었습니다. 사람을 피해 광야나 산으로 들어가 거룩한 시간에 잠기는 주님을 보기란 그리 쉽지 않습니다. 그것조차 늦은 밤이나 이른 새벽에야 있었던 일입니다.
오히려 예수님의 삶은 분주하다는 표현이 어울릴만큼 늘 움직이고 계셨습니다.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당신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분이 사람들을 찾아 가신 것입니다.
주님의 움직임에는 늘 함께 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제자라고 불리던 사람들, 그 중에서도 열 두 제자들이 있었고, 또 못지 않은 이들이 당신을 따랐는데 그 중에는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는 죄인이나 같은 무리에 있었던 이들도 있었습니다. 우리와 문화가 별 반 다르지 않았다면 그들은 한 번의 범죄나 병으로 평생의 부끄러움을 안고 살아가는 인생들이었을겁니다.
사람들에게 멀어진 이유가 스스로의 범죄나 또 사람들과 어울릴 수 없는 병이나 마귀들림이 있었다면 그가 정상적인 삶으로 복귀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주님을 따라다닌 사람들은 이 밖에도 여럿이지만 그들을 기억하는 것은 예수님의 사랑에, 또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그런 범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성당에 어울리는 사람, 하느님을 믿는다 말하는 사람들 중 죄인이 있다는 사실에 힘들어 하고 인정하지 않는 문화들에 오랫동안 접하면서 우리는 실수한 사람, 잘못한 사람, 힘 없는 사람, 아픈 사람들을 성당 밖에 머물게 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사람들로 그 숫자를 채우며 냉담이라고 말하고 쉬는 자라고 말하며 걱정은 하면서도 우리의 문화는 주님의 일행처럼 이해하지는 않았습니다.
우리는 함께 해야 합니다. 우리가 함께 할 때 각자의 몫이 나누어 지고 때로 함께 때로 각자가 하느님의 나라를 이루는 몫을 하게 됩니다. 좋은 것만 뽑으려는 정성은 알겠지만 하느님께 좋지 않은 것이 있는지 생각하면 우리는 서로에게도 하느님의 사랑의 몫을 허락해야 합니다. 꼭 그러했으면 좋겠습니다. 맘에 들지 않아도 우리는 한 길을 걸어갑니다. 누구도 모르는 사이에 평화의 인사를 할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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