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의 공간

“나를 따라라.”

松竹/김철이 2020. 9. 21. 09:32

“나를 따라라.”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부산교구 괴정성당 주임)

 

 

  묵상 듣기 : youtu.be/srxERcTxYOE

 

 

하느님을 믿고 사는 우리들이지만 사람들은 하느님께 다가가는데 일정한 한계들을 설정하곤 합니다. 세상에서 거칠게 살고 잘못이 많았던 이들은 뉘우치고 새로운 삶을 사는 것으로 만족해야 합니다. 세상 밝은 곳으로 나오는 것에 다른 사람들의 눈과 인정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하느님은 진심을 알아주실 거라는 희망과 평생 뉘우치며 살아가야 하는 정도로 생각합니다. 하느님은 공평하시다지만 우리가 그렇지 못해서 생기는 일입니다. 그러다보면 우리에겐 이런 습관이 제도처럼 벽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 우리에게 예수님은 이미 그런 벽을 없애셨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오늘 축일의 주인공인 마태오에게 일어난 일입니다. 마태오는 세리였습니다. 그가 예수님의 제자가 된 것은 죄인으로 불리던 세리의 일을 그만둔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친구들도 다 그와 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게 정리되지 못한 상황에 그는 세관 앞에서 예수님을 만납니다. 

 

 

"나를 따라라"

 

 

마태오를 부르신 예수님은 그와 함께 살아가던 이들과 한 식탁에 앉으십니다. 그리고 그 일로 의인들의 의심을 불러일으키십니다. 그들은 왜 예수님이 죄인들과 함께 있는가에 불만을 가지고 예수님이 사람을 구별하지 못하신다 생각합니다. 죄인들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저렇게 식사를 하실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자리에 함께 한 이들이 누구인지 아신다는 것을 밝히십니다. 사람들이 미워하고 싫어하는 세리와 죄인들. 그들에게도 하느님은 희망을 거두지 않으시고 계신다는 것을 말입니다.

 

죄인이 뉘우치기를 기다리는 것은 모두가 같이 품는 소망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저 기다림이 한계입니다. 그리고 교회의 은혜로 그들이 아무 문제 없이 조용히 살기를 기다리는 것이 우리가 가진 너그러움의 끝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죄를 짓고 있는 이를 그 현장에서 데려다가 당신의 제자로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삶을 사는 이들에게도 같은 부르심을 주셨습니다. 누군가에게 해가 되는 일을 그만두라고 말하는 것은 호통과 분노의 단죄가 아니라 그들과 한끼의 밥을 나누며 그들을 사랑하는 하느님을 알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에게 예수님의 삶을 전해준 복음을 적은 사람으로 우리는 이 마태오를 지목합니다. 죄인이었던 사람, 그가 제자가 되어 우리에게 스승의 삶과 가르침을 전해준 셈입니다. 그의 이름을 기억하며 사랑이란 어떻게 하는 것인지 모두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여전히 병든 이들이 많은 세상이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