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의 공간

“이 세대 사람들을 무엇에 비기랴? 그들은 무엇과 같은가?

松竹/김철이 2020. 9. 16. 09:04

 

“이 세대 사람들을 무엇에 비기랴? 그들은 무엇과 같은가?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부산교구 괴정성당 주임) 

 

 

  묵상 듣기 : youtu.be/p9fAAD52XjE

 

 

세상에 오신 예수님의 눈에 비친 세상은 어땠을까요? 예수님은 그 때 사람들의 모습을 장터에서 함께 하지 못하는 아이들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모든 것에 반대가 먼저이고 도무지 함께 할 수 없는 상황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하느님을 모두 말하면서도 어느 곳에서도 하느님을 찾지도 만나지도 못하는 길 잃은 아이처럼 보였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어떨까요?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시간을 넘어 우리를 뜨끔하게 하는 일들이 자주 있지만 여전히 우리는 답을 찾지 못하고 함께 노력하지도 못하는 이들로 살아갑니다. 결국 무엇이 옳은지 또 무엇을 함께 할 수 있을지 시도조차 못하는 것은 매 한가지입니다.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곡을 해도 울어주지 않는 이들의 상태는 그냥 멈춰버린 삶의 막막함과 건조함을 동시에 느끼게 합니다. 무엇이 필요한지 백가지의 약이 효과가 없다는 이야기가 딱 맞아 떨어지는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하느님께 향하는 두 가지의 길이 모두 존재했음을 이야기하십니다. 곧 세례자 요한의 길과 예수님의 길입니다. 그 모두가 하느님에게서 나왔으므로 당연히 우리는 그 길에서 하느님의 뜻을 찾고 한 하느님 안에 살게 됩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때로 세례자 요한처럼 엄숙하고 경건하게 기도와 고행을 감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또한 우리의 삶에서 주님의 삶처럼 먹고 마시며 행복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한 쪽은 미쳤다고 말하고 다른 한쪽은 죄인과 다를바가 없다고 말하며 어떤 것도 인정하거나 함께 하려 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겐 분명 이 모든 것이 가치가 있으나 세례자 요한을 선택하면 그것은 특별하다고 제외시키고, 예수님을 선택하면 세속적이라고 말하며 뱉어낼 겁니다. 

 

 

양편으로 나누어 살아가는 이런 이질적이고 평행선 보다 못한 삶에서 하느님은 여전히 홀로 노력하시는 듯 보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이미 다 열려진 진리 앞에 오랜 기다림은 계속됩니다. 어떻게든 한 마음이 되어야 하겠는데, 우리의 노력은 우리의 마음을 어찌해야 할까요? 

 

물음표 이상의 말을 이어가지 못함은 아주 작은 부분에서조차 똑같은 장터를 목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