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부산교구 괴정성당 주임)
묵상 듣기 : youtu.be/9K4spDZkaSU
세상에 고통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되도록 고통이 예상되는 것은 피해가려하고 고통 없는 삶을 사는 것이 행복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삶에 고통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서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합니다. 고통은 자신이 감내해야 하는 통증과 같은 것과 간접적인 이유로 느끼는 마음의 아픔 등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성모님이 겪으신 고통을 생각합니다. 이 고통은 어머니의 고통입니다. 자녀가 어릴 때 부모는 대신 모든 고통을 겪어내며 자녀를 고통에서 보호하지만 자녀가 자라면 부모는 자녀의 고통을 함께 느끼며 그 책임감을 홀로 짊어지기도 합니다.
성전에 봉헌되며 인생을 시작하신 아기 구세주의 미래를 예언하는 시메온은 아기의 삶이 세상에 하느님의 뜻으로 드러내는 운명을 말하며 어머니의 마음이 칼에 꿰질리게 될 것이라 이야기 합니다.
십자가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는 우리는 예수님의 모든 삶이 마치 고난의 삶인 듯 생각하지만 사실 예수님의 눈 속에 있었던 세상은 주님의 사랑 안에 있었고 주님은 그들과 함께하며 진실을 말하고 정의를 이야기하시며 참 기쁨의 삶을 살았습니다. 곧 주님과 함께 하셨던 성모님의 생애도 그 아들과 함께 복된 삶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아들의 삶이 세상이 만든 위선과 죄의 굴레에 휩싸여 고통으로 마무리 될 때 그 때 성모님은 그 아들이 걷는 길에서 가슴에 꿰찔리는 아픔을 겪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알아듣지 못하는 아니 알고서도 외면하는 세상은 아들을 죽여 자신들의 잘못을 감추고 위선을 유지하려 했습니다. 그런 이들의 잘못에 정면으로 맞서 물러서지 않는 아들의 운명을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 하는 어머니는 고통의 크기 뿐만 아니라 고통을 어떻게 우리가 대해야 하는지 알게 하십니다.
되도록 고통을 피하고 싶지만 이것이 겪어야하는 고통이라면 그 고통 앞에서도 지켜야 하고 해야 할 일을 바로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들은 그 삶을 제자들에게 넘겼고, 그 제자들을 이 어머니에게 넘겨 그들과 함께 하실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어쩌면 제자들에게도 반복되는 위험과 위기는 어머니께 고통을 넘긴 듯 보이지만 아들의 삶의 가치를 아는 어머니는 이 고통조차 필요한 것으로 아시고 모든 아들들에게 하느님의 뜻을 마지막까지 지켜주셨습니다.
고통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고통이 모든 것이 아니기에 우리는 그 고통 안에 견딜 수 있습니다. 그 고통이 전부는 아니기에 우리는 인생의 쓴 순간들을 무사히 넘어갈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그것이 사랑을 위해서라면 오히려 기쁘게 그 고통 한 가운데 머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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