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의 공간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松竹/김철이 2020. 9. 14. 10:32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부산교구 괴정성당 주임) 

 

 묵상 듣기 : youtu.be/Z-NJfNr8uyo

 

 

십자가 현양 축일입니다. 십자가가 우리 위로 올려졌을 때 그 십자가의 의도는 예수님을 죽음으로 몰아간 사람들의 생각이었습니다. 곧 예수님처럼 살면 이처럼 죽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 사이에 바보같은 어리석은 죽음은 하느님을 아버지라 하며 하느님을 가까이 한 죄와 그에 걸맞는 품위를 갖추지 못한 죄입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에 거짓을 지적할 사람은 없지만 예수님이 위험했던 것은 그에 걸맞는 어떤 것도 갖추지 못하셨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하느님을 믿으면서도 자신들이 만든 문화 안에서 하느님을 섬겼고 그래서 하느님의 원래 뜻보다 자신들이 생각하고 형성해 낸 것을 더 중요하게 믿었습니다. 

 

그 때의 사람들은 구세주가 오시면 세상을 심판하시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눈 앞에 나타난 예수님은 그 권능이 아니라 사람들을 구하려 하셨습니다. 그것이 심판의 원래 의미였기 때문입니다. 심판을 할 권한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 심판이 죄인을 가려내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알았던 아들이기에 예수님은 권한과 권리 대신에 아버지의 뜻에 대한 순명과 모든 백성의 희망으로 사셨습니다. 

 

따라서 하느님을 말하면서도 교만하게 자신들만을 알았던 이들에게 예수님은 수많은 백성들의 희망이 되셨고 반면 미움의 표적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힘 없는 이들의 표상이었고 죄 없으나 죄인으로 몰리는 이들의 표징이었습니다. 그래서 살인자들의 의도대로 모든 이가 볼 수 있도록 십자가에 달려 높이 올려지셨습니다. 그것으로 사람들은 의인의 죽음을 목격했고 결과적으로 그 의인의 부활을 체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십자가가 구원의 징표가 된 것은 바로 그런 의인의 죽음은 하느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니었다는 의미입니다. 아버지께서 그 십자가의 죽음을 본 모든 이들에게 그 주인공을 살려내심으로써 하느님의 진정한 뜻과 구원의 길이 선포된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주님은 더 없이 힘 없고 순수한 백성이 되셨습니다. 권력으로 하느님의 은총을 자랑하던 이들과 달리 선함으로 살던 이가 희생되는 모습이 백성들에게 참 하느님의 백성의 모델이 되어 준 것이 십자가 사건이니 말입니다. 

 

 

오늘도 성당의 가장 높은 곳에 십자가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그 십자가를 향해 고개를 듭니다. 그 십자가를 본 사람에게 구원의 희망이 주어지는 것은 그 십자가의 주인공의 삶이 곧 우리의 삶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처럼 사는 사람이 하느님 구원 안에 머무는 사람입니다. 십자가는 섬김의 대상이 아니라 따름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