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의 공간

“저를 어떻게 아십니까?”

松竹/김철이 2020. 8. 24. 08:17

 

“저를 어떻게 아십니까?”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부산교구 괴정성당 주임) 

 

 

    묵상 듣기 : youtu.be/0AgPrmAl8Jc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와 생각들에서 상식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사람들의 경험이 쌓이거나 많은 사람들이 오랜기간 믿어온 것은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하느님과 거룩한 것에 대한 상식 또한 그렇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거룩함과 하느님에 관계된 것에도 이런 상식이 존재하고 그것은 장소, 사람 등에 대한 부분에서 더욱 견고한 특징을 보입니다. 

 

제자 필립보가 느끼는 예수님의 거룩함과 진리는 그의 인생을 바꿀만큼 강렬했지만 그 개인적인 체험이 사람들이 가진 생각을 넘어설 수는 없었습니다. 그가 나타나엘에게 소개한 예수님은 그 보편적인 상식을 지닌 사람의  생각을 바꾸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상식에는 전혀 근거가 없는 나자렛 출신이었기 때문입니다.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냐는 그의 말은 그가 아는 기준 속에 거룩함과 연결되지 않는 곳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출생이 베들레헴이라고 또 성경을 찾아서 나자렛 사람의 예언을 이야기하지만 적어도 그 때의 사람이었던 나타나엘에게 나자렛은 존중받을 수 있는 곳이 아니었고 그래서 그곳에서 온 한 사람은 동료의 이야기에도 전혀 생각을 바꿀 수 없었습니다. 

 

상식적인 사람 나타나엘의 생각이 바뀐 것은 이미 그를 알고 계신 주님을 직접 만나고 난 후였습니다. 아주 짧은 대화에서 그럴만한 계기를 짐작하거나 발견하기는 쉽지 않지만 주님은 그가 참된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아는 나타나엘은 상식에 기반한 생각을 하는 이스라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상식 안에서 사는 사람. 그래서 특별하기보다 정직하고 아는대로 행동하는 사람. 그가 알았던 것이 틀렸다 해도 그가 주님에게 인정받았던 것은 그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 그를 예수님은 눈여겨 보고 계셨고 그것을 들은 나타나엘은 주님을 뵙고 그 순간 자신의 생각이 무너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고백합니다. 스승님이라고 말입니다. 

 

우리는 그를 예수님의 제자로 기억하고 기념합니다.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 안에서 머물고 생활하다 실제 하느님을 알게 되는 변화를 체험한 제자는 그 순수함과 정직함으로 주님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그 성품으로 주님을 따랐을 것입니다. 여전히 그가 어떻게 예수님을 바로 받아들일 수 있었는지는 궁금하지만 그럼에도 그에게 주님을 소개한 필립보와 다른 제자들을 생각하면 그들에게 예수님의 느낌이 어떤 것이었는지 알만 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들은 하느님과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느님의 차이가 심각해보이는 요즘은 그의 경험이 절실하다는 생각만 머리 속을 맵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