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부산교구 괴정성당 주임)
묵상 듣기 : youtu.be/_92puY_M5Ig
신앙을 어렵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특별한 사람들을 위한 특별한 무엇인가가 있는듯 설명하고 그러기 위해 평소와 다른 어떤 것을 요구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노력이라는 단어와 열심히라는 말이 붙어있는 신앙에 대해 사람들은 이것 때문에 신앙의 위기와 종교의 위태로움을 말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부분은 결국 영원한 생명, 곧 구원의 희박함으로 연결됩니다. 하느님 나라에 가야 하는데 이대로는 안된다고 말하며 열심히 하는 신자와 게으른 신자들로 사람들을 구분합니다. 결국 우리의 노력에 따라 하늘나라도 결정된다는 이야기이고 더 효과 좋은 종교와 사람들의 무리를 따르고 성경이든 영성이든 좀 더 차원이 높은 곳을 찾게 됩니다. 물론 그 반대에는 냉담이나 자유를 찾아 나선 신앙의 무직자들도 더 많이 형성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치신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 우리가 눈으로 보고 있는 수많은 신앙행위들 이전에 단순한 두 가지 겹쳐져 있는 열쇠가 전부였습니다.
율법 교사가 예수님에게 물었던 것은 예수님의 근본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주님에게 가장 중요한 신앙의 핵심은 무엇인가를 묻고 정체를 따지려는 율법학자에게 예수님은 당신은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 이 둘을 이야기하십니다.
그리고 당신을 넘어 구약에까지 이어지는 율법과 예언서를 요약해버리십니다. 결국 이 두가지 가치 안에 우리는 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리의 성경을 공부하는 것도 또 우리 삶 안에서 하느님을 알게 되는 것도 이 둘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느님이 세상의 근본을 주신 분이고, 끝까지 세상을 사랑하시는 분임을 설명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길을 잃고 방황할 때마다 찾아나선 목자처럼 바른 길로 인도하시는 하느님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결론은 그런 하느님의 사랑을 알고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해야 하고 삶에 있어서 서로를 아끼는 마음으로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이라면 우리는 우리의 지식과 행동의 양과 질을 살피는 대신에 오히려 우리의 삶을 살피고 그 안에서 하느님을, 그리고 이웃을 살피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생활이 하느님을 중심으로 모든 이들에게 사랑하며 살아가는지를 살피는 것이 신앙의 깊이를 좌우하는 내용이라는 것입니다.
나의 선함과 정의로움이 하느님으로부터 나온다고 생각하며 사는 이가 얼마나 됩니까? 내가 이렇게 사는 근본이 하느님에 있고, 내가 바보처럼 좋은 사람인 이유가 또한 그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근본에 합당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 두 열쇠는 하나로 움직이며 따로 분리할 수 없는 가치입니다. 이미 자신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인간에게 예수님이 둘로 나누어 설명하셨을 뿐 결국 이 둘은 진리에서 함께 맞물려 돌아가는 가치입니다. 진리는 단순하며 그곳에서 모든 것이 나왔습니다. 덧붙이고 구분짓고 차이를 만들어 차별로 움직이는 것은 하느님께 나아가는 길이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신앙인들이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고 있는 이유 역시 근본이 비뚤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가치에 매달려 신앙이란 단어를 들이대는 이들은 그들이 이미 하느님을 가리고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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