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의 공간

"내가 후하다고 해서 시기하는 것이오?"

松竹/김철이 2020. 8. 19. 08:31

"내가 후하다고 해서 시기하는 것이오?"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부산교구 괴정성당 주임) 

 

 

묵상 듣기 : youtu.be/n04wS5bHbLA

 

 

하늘나라에 대해 사람들이 가지는 두려움과 막막함을 예수님은 여러 비유로 풀어 주시려 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어렵고 특별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지만 그런 생각을 만든 것은 오히려 사람들이었습니다. 

 

부자 청년의 이야기에서 이어지는 사람들의 생각은 예수님의 말씀, 곧 바늘구멍과 낙타로 기억되는 내용을 모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이야기로 확대시키고 누구도 들어가기 힘든 곳으로 하늘나라를 만들어 버렸습니다. 부자가 삶의 가장 윗자리를 차지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힌 이들에게는 예수님의 이야기가 모든 이를 위한 한계를 설정한 듯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의 문이 얼마나 늦게 닫히는지. 그리고 그 나라에서 우리가 어떤 몫을 차지하게 될지 오늘 복음의 이야기로 들려 주십니다. 

 

포도밭에 일할 일꾼을 구하러 이른 아침부터 나선 밭의 임자는 해가 얼마남지 않은 시간까지 일꾼을 모아 들입니다. 누구도 불러주지 않고 써주지 않는 사람들조차 그의 밭에서 일하게 됩니다. 그리고 품삯을 받는 시간 그 마지막에 온 사람부터 이른 아침에 밭에서 일을 시작한 사람까지 모두 같은 품삯을 받게 됩니다. 

 

하루 종일 일한 사람들의 볼멘 소리가 있지만 주인은 모두에게 동일한 품삯을 약속했노라며 그 불만을 잘라버립니다. 그리고 주인의 후함은 우리가 말하는 상대적인 가치를 넘어버립니다. 

 

그것이 하느님의 마음이라고 예수님은 이야기하십니다. 하늘나라는 바늘구멍처럼 들어가기 힘든 곳이 아니라 아버지 하느님은 마지막까지 그 문을 열어 자녀들을 기다리신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곳에는 처음부터 원했던 이들이나 마지막에 그 길을 발견하고 가게 된 사람이나 모두 같은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된다는 것도 알려주십니다. 

 

하늘나라는 우리의 기준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삶으로 하늘나라를 그리고 설명하는 동안 그 나라는 거의 불가능한 나라가 되어 버렸지만 하늘나라는 우리가 그린 그림과는 전혀 다른 곳이고 그 길은 언제나 비어 있고, 그 주인인 하느님은 마지막까지 우리에게 희망과 기회를 두시는 분이십니다. 

 

 

꼴찌가 되어버린 첫 일꾼들조차 불만일만큼 후하신 하느님을 두고 여전히 우리는 그 나라의 문을 닫아버리고 좁히는데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소수의 사람에게만 허락된 듯 하늘나라와 영원한 생명을 말하면 사람들이 열광하게 된다는 것을 이용합니다. 

 

왜 그럴까요? 예수님의 비유를 들려주고 싶은 이들이 많은 요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