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을 움직이는 원동력 뒤에는
겸손기도 마진우 요셉 신부님
사람들을 움직이는 원동력 뒤에는 반드시 그 의지를 작동시키는 이유가 존재합니다. 신앙인은 표면적으로는 하느님을 표방하지만 전혀 다른 작동 근거가 뒤에 숨어 있을 수 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그 대표는 바로 마몬, 즉 돈에 대해서 인간이 일으키는 탐욕이 되고 그것을 좀 더 심도 깊게 파고 들어 보면 결국 그 사람 자신의 이기성, 바로 자신이 의지하는 바가 어떤 수단과 방법을 통해서든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숨어 있습니다.
하느님을 따르는 이들, 하느님의 의지에 자신의 의지를 내어 맡기는 사람은 단 하나의 의지로 모여들게 됩니다. 그것은 형언할 수 없이 아름다운 궁극의 사랑입니다. 그래서 이 사랑을 배워가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은 나날이 더욱 서로 닮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그 모습은 날이 갈수록 예수 그리스도를 지향하게 됩니다. 그분은 하느님 아버지의 모습을 가장 완전하게 드러낸 유일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정반대로 하나의 의지, 선이고 사랑이며 아름다움 그 자체인 의지에 자신을 모아들이지 않는 이들은 저마다의 의지가 주체가 되고 그런 의지들은 본질상 결코 하나로 모여들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그들은 때로 ‘연합’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최종적으로는 반드시 서로 시기하고 헐뜯고 싸우게 됩니다. 그건 자기 자신만 아는 이들의 너무나도 당연한 결과입니다.
우리는 얼마든지 사랑을 흉내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랑도 결국 드러나는 외적 방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외적 방식을 흉내내면 마치 사랑을 아는 듯이 훙내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이 되어가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답안지를 외우는 아이와 푸는 방식을 아는 아이가 서로 다른 것과 같습니다. 훙내내어진 선, 시늉만 하는 사랑을 위선이라고 하고 가식이라고 합니다.
꽃에서는 꽃향기가 똥에서는 똥냄새가 납니다. 똥에 금색 스프레이를 뿌리면 황금색으로 보이겠지만 냄새는 어쩔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내면에 선이 존재하지 않는 이가 선해 보이는 행동을 한다고 해서 착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끊임없는 악의 냄새를 풍겨댑니다. 그건 증오이고 격노이며 다툼이고 시기이며 탐욕이고 이기심입니다. 성당에서 열심하기로 유명한 사람이지만 곁에서 잠시만 같이 이야기를 나누어 보면 그 안에 들어있는 본체가 모습을 드러낼 때가 있습니다. 자화자찬, 남에 대한 험담, 비밀을 좋아함, 자신만의 사람을 만들려는 노력... 이러한 것들이 그 위선자를 분별해 내는 훌륭한 지표가 됩니다.
선을 사랑하는 이는 누군가의 비밀을 귀 기울여 듣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는 하느님에게 나아가는 자신에게서 부족함을 늘 발견하고 그것을 개선시키는 데에 쏟는 노력 만으로도 여력이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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