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의 공간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松竹/김철이 2020. 5. 13. 10:20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부산교구 괴정성당 주임)




묵상 듣기 : https://youtu.be/HSGdzvvCUkI




복음에는 농부와 포도나무, 그리고 가지가 등장합니다. 그리고 그 끝에 포도송이가 열립니다. 부활에 듣는 복음은 의문과 질문이 아닌 완성된 진리로 말씀을 듣게 합니다. 그리고 그 위에서 좀 더 깊은 의미를 들여다 보게 됩니다. 


농부와 포도나무의 관계는 밭의 주인과 그 주인이 선택한 나무를 심었다는 관계입니다. 그리고 포도나무와 가지는 나무에서 뻗어난 가지의 관계입니다. 먼저 농부가 있지 않으면, 또 포도나무가 먼저 자라지 않으면 열매를 맺는 가지도 생길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라는 말을 반대로 생각하곤 합니다. 우리가 마치 선택적으로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언제라도 떠날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또 그렇게 행동합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나무가 가지를 붙들고 있는 것입니다. 나무는 농부가 심어서 자라는 것이고, 가지는 나무가 붙들고 양분을 주어야 열매도 성장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로 이 나무에 붙었다 떨어졌다가 가능한 듯 생각하고 행동하고 있습니다. 


농부이신 아버지로부터 시작하는 이 이야기는 하느님이 아들 예수님과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보여줍니다. 곧 달리 보면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아들 예수님의 증언이자 예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고백하는 내용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분 안에 머무는 것은 속박이 아닙니다. 우리가 어긋난 일을 하는 것이 사람들 안에서조차 자유가 아닌 것처럼 하느님 안에 머물며 사랑하고 사는 것을 속박이나 구속으로 여길 수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열매 대신 자신의 몸을 불리려 하면 열매도 없는 무거운 가지처럼 결국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결과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 없이는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으리라 하십니다. 이 말은 주인이 종에게 무능함을 지적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사랑이 우리의 모든 것에 닿아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의 가지로 사랑의 열매를 맺는 것이 해야 할 일입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땅으로부터 시작된 영양분을 받고 그것을 잎과 꽃에 나누어줌으로써 가능해집니다. 사랑 받은 것을 사랑하는 것으로 다시 주인에게 돌리는 것이자 그것이 우리가 누리는 행복한 삶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무는 결코 가지를 버리지 않습니다. 나무를 사랑하는 가지는 농부를 사랑하는 포도나무를 닮아야 합니다. 그 생명의 가지가 우리입니다. 노력이 아닌 그분의 사랑으로 가능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