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의 공간

"내가 한 바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그를 심판할 것이다."

松竹/김철이 2020. 5. 6. 09:04

"내가 한 바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그를 심판할 것이다."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부산교구 괴정성당 주임)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자리에 있다는 것. 그 맡은 직무가 그렇고 이 직무의 처음이시자 마지막이신 그리스도 덕에 이렇게 사랑을 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사제가 되면서부터 시작된 이 고정된 존경의 자리는 큰 잘못과 실수만 아니라면 유지할 수 있습니다. 노력이 없어도 해야 할 일이 정해져 있고 그것에 충실한 것 만으로도 괜찮은 자리가 사제직입니다. 


그리고 이런 삶은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에게는 일종의 보호막을 얻어 사람들의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자리가 되어 있습니다. 정말 가까운 이들에게 보이는 사제의 모습이 과연 사람들의 존경과 기대를 받을만한지는 알아볼 방법 조차 어려우니 스스로 조심하거나 아니면 본분에 충실한 삶을 노력하는 것이 유일한 길입니다. 가까운 이들의 증언을 믿을바도 못되거니와 진리를 궁금해하고 함께 지낼 수 있는 이웃이 누군지도 불확실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 소명을 받아 든 이의 삶의 태도는 이런 것을 궁금해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예수님은 사람들이 당신을 어떻게 대하는지 아시지만 그것 때문에 당신의 태도를 바꾸시거나 방법을 변화시키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당신이 해야 할 일을 하시는 것이 주님의 유일한 방법이십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보내신 분을 드러내고 있음을 증언하시면서 당신이 누구도 어둠 속에 머물지 않게 하시려고 살고 계심을 말하십니다. 빛인 이유는 빛나기 때문이 아니라 누군가의 앞을 비추어 그가 바른 길을 걷도록 돕기 위해서입니다.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알고 그 길을 걸어가게 하시려고 예수님은 계속 당신의 빛을 비추십니다. 그러니 그의 선택에 따라 예수님의 빛이 약해질리도 사라질 리도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가 그 빛을 피해 걸으면 그의 어둠이 더 잘 드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사랑을 그치지 않으시기에 우리가 이야기하는 구원의 순간에도 당신 사랑과 구원의 빛은 그치지 않습니다. 아직도 심판자로 주님을 몰아세우는 세대에 예수님의 말씀은 분명합니다. 



"누가 내 말을 듣고 그것을 지키지 않는다 하여도, 나는 그를 심판하지 않는다. 나는 세상을 심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세상을 구원하러 왔기 때문이다."



주님의 심판은 하느님의 심판이며 그것의 기준은 예수님의 손이 아니라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된 아버지의 뜻으로 인해서입니다. 예수님은 그 말씀을 전하시고 우리가 언제든 아버지께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문이 되십니다. 그래서 그분은 사랑하기를 그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지막에 기다리는 심판의 내용은 이러하며 그 심판을 위해 예수님은 심판이 아닌 구원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내가 한 바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그를 심판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늘 구원이 열려 있음을 알아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누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받아들이는가가 아니라 우리는 언제나 그들 모두를 위해 파견된 이라는 사실만을 생각하고 빛을 비추어 내고 짠맛으로 세상의 살맛을 느끼게 하는데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멈추면 일하시는 주님을 슬프게 해드리는 것이며 그분 앞에서 정말 부끄러움을 어쩌지 못하는 처지가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니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빛을 받아 누군가의 앞을 비추는 또 다른 그리스도의 빛이며 그리스도의 얼굴로 하느님을 세상에 드러내는 이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가치는 그것이고 그 가치를 통해 우리는 구원에 다가갑니다. 도구라는 이유로 쓸모라는 이유로 우리가 슬퍼할 이유가 없는 것은 이 모든 것이 하느님으로부터 전해지는 사랑을 받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주님의 말씀을 따라 걷고 주님의 말씀을 전하는 당당한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