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습니다."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부산교구 괴정성당 주임)
예수님을 찾아온 사람들. 그들이 예수님의 빵을 먹었고 그 일 때문에 찾아온 상황입니다. 그러나 복음은 마치 그 이유가 모두 뒤바뀐듯 합니다. 하느님이 보내신 이를 믿어야 한다는 말에 사람들은 예수님께 말합니다.
"그러면 무슨 표징을 일으키시어 저희가 보고 선생님을 믿게 하시겠습니까? 무슨 일을 하시렵니까?"
이 모습은 마치 예수님이 장터에 사람들을 불러 모아 놓고 나를 믿어라고 부탁하신 듯 느껴지기도 합니다. 사람들에게 신뢰를 얻으려면 사람들을 놀라게 할 어떤 표징을 보여주어야 할 듯 합니다. 그러나 이 복음에 등장하는 표징을 같은 자리에서 예수님은 당신에 대해 사용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표징은 예수님이 그들을 대하신 마음, 곧 하느님이 사람을 어떻게 여기시는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빵이 아니라 왜 빵을 나누어주시려 하셨는지가 표징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요구하는 표징은 빵의 기적보다 더 대단한 무엇인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믿음을 얻으려면 예수님이 치러야 하는 비용이 대단하고 놀라운 기적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당신을 증명해야 믿어주겠다는 것입니다. 끊임 없이 기적을 요구하는 백성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합니다. 자극적인 부분, 우리가 불가능한 것에서 하느님을 찾으려는 사람들의 모습은 지금도 전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의 요구는 구체적이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이 넘어서야 할 기준으로 삼은 것은 조상 이스라엘이 손에 받아든 만나와 메추라기였습니다. 그리고 사람으로는 모세가 버티고 있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습니다."
현실적 이익이 아니면 하느님도 믿지 못하는 백성들. 하느님이 구해주신 것은 잊고 그들은 만나만 기억하는 이들에게 주님은 다시 한 번 근본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십니다. 그들이 말하는 표징 이전의 표징 곧 만나를 준 것은 모세가 아니라 하느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기억해야 하는 것은 만나가 아니라 하느님이어야 함에도 그들은 물러서지 않습니다.
“선생님, 그 빵을 늘 저희에게 주십시오.”
예수님이 바라는 말을 하는 듯한 이 백성은 결국 눈 앞에 주님에게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외칩니다. 예수님이 그들의 바람을 허락하지 않으셔서가 아니라 그들은 끝까지 주님이 자신들에게 무엇인가를 주시기를 바란 것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것은 좋지만 정작 주님께는 관심이 없는 사람들의 모습은 답답한 담벼락처럼 느껴집니다. 예수님은 좋지만 그분의 이야기는 전혀 들리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처럼 말입니다.
과연 우리에게 하느님은 예수님은 어떤 가치인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의지 역시 바뀌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고백은 주님 앞에서 하고, 증거는 삶으로 해야 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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