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의 공간

"제자들은 떠나가서 곳곳에 복음을 선포하였다."

松竹/김철이 2020. 4. 25. 11:31

"제자들은 떠나가서 곳곳에 복음을 선포하였다."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부산교구 괴정성당 주임)



부활의 시기에 예수님 승천의 사건을 미리 봅니다. 주님의 부활 이후 40일이 지난 날 예수님은 제자들을 두고 하늘로 올라가십니다. 주님의 오심이 그러했듯 주님은 정해지지 않은 날 우리에게 오신 듯 그렇게 우리를 떠나십니다. 모두가 기대했던 메시아의 탄생. 그러나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주님의 오심이 그러했듯 영원한 생명의 주님은 홀연히 우리를 떠나셨습니다. 그리고 아직 믿음도 온전하지 못한 제자들을 두고 불완전한 상태의 이들을 두고 "꼭 그래야만 한다"며 한사코 우리를 두고 올라가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복음을 전합니다. "우리 주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주님을 믿는다는 것을 처음 전한 제자들은 순박하고 선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평범해서 놀라웠던 사람들이 전해준 복음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며 함께 계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임마누엘"의 의미는 우리 안에 계신 하느님을 전하는 것이어서 그것은 종교로의 인도가 아니라 삶의 태도를 하느님으로 전환하고 하느님의 뜻대로 사랑하며, 그것도 서로 사랑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으로 살아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기 위해 그들은 서로의 부족함을 메우는 사랑으로 함께 살아가며 빵을 떼어 그리스도의 몸을 함께 영하며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이런 선한 삶이 주변의 많은 이들을 행복하게 했고 그것으로 사람들은 하느님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오늘 복음 사가의 축일에 읽은 주님의 승천과 복음 전파의 시작은 그 주제만으로도 우리를 기쁘게 함이 있습니다. 가장 짧은 복음인 마르코 복음은 주님이 어떤 분이셨는지를 전하기 위해 적혀졌습니다. 성경의 지극히 거룩한 가치는 이런 주님을 전하려는 의도에서 발견됩니다. 누구라도 주님을 알았으면 좋겠고 그래서 누구라도 읽으면 알 수 있게 글로 적은 것이 복음서들입니다. 


그 속에 우리는 늘 부족하기만 하고, 주님은 그런 우리를 위해 악전고투하십니다. 그 복음은 2천년 동안 수도 없이 해석되고 묵상되었으며 사람들에게 여러형태로 전해졌습니다. 그 모든 경우 속에 우리가 알게되는 예수님은 우리에게 복음이어야 합니다. 그분이 대단해서 복음이 아니라 읽는 우리가 기뻐야 복음입니다. 하느님이 좋으신 분이어서 복음이 아니라 우리가 하느님과 함께 있어서 행복해야 복음입니다. 


복음은 분명 그런 주님을 글로 전하고, 제자들은 그런 주님을 자신들의 삶으로 전했습니다. 그 가치를 생각하는 복음사가의 축일이면 좋겠습니다. 복음은 그렇게 제자들을 파견하시고 주님도 그들과 함께 여전히 일하셨음을 밝히십니다. 우리는 부족하지만 이 대단한 일들이 가능한 이유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족함에 고개숙이기 보다 이를 함께 하시는 주님과 함께 우리 안에 하느님이 함께 계신다는 것을 선한 삶과 바른 삶, 그리고 지독한 사랑으로 전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