松竹♡수필

청춘의 돌담길 따라 시간도 한 걸음 느리게 걷더라./1편 노래와 더불어 살아온 인생

松竹/김철이 2020. 3. 9. 00:06

청춘의 돌담길 따라 시간도 한 걸음 느리게 걷더라.  

           -1편 노래와 더불어 살아온 인생-

 

                                                                                                                     김철이

 

 

 사람들은 흔히 말하기를 인생은 덧없는 것이라 한다. 그렇다면 과연 인생이란 얼마나 덧없고 부질없는 것이란 말인지. 세상 누구에게나 자신이 살아내야 할 몫의 길고 짧은 인생이 있는 법인데 각자 어떤 색깔의 인생을 살며 그다지 곱지 못한 희로애락 속에 울고 웃는 것인지 저녁 밥상을 물리고 칠공팔공 추억의 노래들을 들으며 잠시 하루의 찌든 피로를 씻고 있노라니 문득 과연 나의 인생은 어떤 색깔로 살았고 그 색깔에 덤으로 묻어나는 어떤 향기를 뿜어내며 살아왔을까? 하는 자문이 생긴다.

 

 밤의 유혹이 유리창에 저만치 비쳐 허황한 가슴에 머물고 아파트 빌딩 숲 사이로 희미하게 넘겨지는 옛 추억의 일기장 속에 일상생활 그 자체가 한눈에 보아도 안쓰러울 정도로 불편하고 어눌한 한 장애아가 우두커니 창밖을 내다보며 오래된 고물 라디오에 귀를 기울인다. 내일의 황령산 모습이 어찌 변할지도 모르면서 다 낡은 스피커에서 찍찍거리며 흘러나오는 유행가에 침체하여 온 정신을 빼앗겨 있는 아이였다. 그 아이는 전신에 중증의 지체 장애를 지니고 있었던 터라 바깥출입이 자유롭지 못했었기에 자연스럽게 장르에 구별 없이 각종 노래와 친숙한 벗이 되었다. 그 아이의 인생에 노래가 없었더라면 인생 미순(耳順)을 산다는 것은 한 자락 꿈도 꿀 수 없는 현실이었다. 가슴속 열정이 누구보다 뜨거웠던 아이는 그 열화와 같은 가슴속 열정을 풀어낼 길이 없어 나이에 걸맞지 않게 시대를 표현하는 유행가 곡조와 가사에 빠져들었다. 아이는 예능(藝能)과 기능(技能)에 있어 끼 많은 재능을 다 풀어내지 못해 삶의 행동 하나하나가 한풀이였던 부친과 일제 강점기 일본군 강제위안부 마수(魔手)를 피해 가난한 가문으로 시집을 오는 통에 여류 작가의 꿈을 접어야 했던 모친의 기구한 운명 덕분에 노래와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다.

 

 한때는 노래하는 딴따라 가수의 길을 걷기를 소망하며 그 꿈의 아지랑이를 따라 젊음을 불살랐던 아버지, 고향 친구인 가수 고복수 선생님을 거울삼아 인생을 사셨던 아버지는 어려운 가정형편 탓에 가수의 걸음을 잠시 멈추고 생계를 위해 갖은 공구를 들었지만, 한순간도 노래를 입에서 멀리하지 않았다. 그랬기에 아버지는 자식들을 등에 업어 재울 때도 자장가 대신 손인호 선생님의 비 내리는 호남선을 흥얼거렸고 사람이 살면서 행해야 할 사람의 도리 중에 사람 사는 향기를 무엇보다 중요시했던 생활습관을 껌딱지처럼 몸에 붙이고 사셨던 덕에 어머니의 아무런 동의도 없이 퇴근길 불시에 직장 동료들을 집으로 데려오는 날이면 반드시 걸판진 술판이 펼쳐지고 노래방 문화가 도입되지 않았던 시대라 자연스럽게 밥상 모서리를 두들기는 젓가락 장단으로 주거니 받거니 노랫가락을 이어갈 때면 아버지는 특유의 까랑까랑한 목청을 열어 남인수 선생님의 경상도 아가씨가 불우한 시대의 사십 계단에서 구슬피 울게 하셨고 진방남 선생님의 꽃마차에 맛깔 나는 곡의 채찍질을 가하셨다.

 

 독립운동 자금책이라는 신분을 감추기 위한 목적으로 경주에서 대규모 술도가를 경영하셨던 외조부(外祖父)님의 41녀 중 고명딸로 태어나 엄하지만, 가슴이 세상 누구보다 따뜻하신 부친의 큰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성장해 가시던 어머니는 광활한 인생의 대지 위에 문학소녀의 푸른 꿈을 심어 키워가셨는데 시대를 잘못 타고났다는 한 가지 이유로 잔혹하고 무자비했던 일제의 더러운 손길에서 벗어나려 야밤에 얼핏 다녀가 얼굴 한번 제대로 쳐다보지 못한 가난뱅이 용접공의 아내가 되어야 했었기에 가슴속에서 움터 자라던 문학소녀 꿈의 씨앗을 제대로 피워보지도 못했으니 그 한인들 오죽했겠는가! 행인지 불행인지 알 순 없지만, 사지에 남다른 장애를 지녔던 탓에 말로는 표현할 길 없는 어머니 뜨거운 사랑을 받으며 50년을 살았었기에 우리 3남매 형제 중 어머니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동고동락했으니 기구했던 어머니 한 생을 나만큼 이해하려 노력한 가족도 없었다. 철없는 한 때는 어머니의 그 가련한 인생이 가여워 본심과는 달리 괜스레 어머니 가슴에 불을 지르곤 했는데 어머니 내 곁을 떠나신 지 10여 년이 흘렀지만 그런 사소한 일들이 아직도 내 아픈 가슴 살점을 야무지게 후벼 판다.

 

 어머니는 돈에 속고 시대에 속은 비운의 여인이었다. 동지섣달 함박눈처럼 내려 가슴에 쌓인 한 덩어리를 주체하지 못해 때로는 곱게만 자랐던 소녀 시절이 실없이 기억의 언저리를 맴돌았던지 저녁나절 걸레로 방을 훔치며 이난영 선생님의 목포의 눈물을 자그마한 목소리로 흥얼거리며 행주치마 끝자락으로 의미 모를 눈물을 훔치셨고 몸이 성지 못한 차남의 영혼 속에 세상 모습 두루 새겨주고 싶은 심정에 아들을 등에 업고 코스모스 허리춤이 하늘거리는 들길을 거닐며 황금심 선생님의 알뜰한 당신을 조용한 목소리로 불러보며 등에 업힌 아들자식이 살아갈 미래 세상에서 본인이 이루지 못한 문학도의 길을 걸으며 한 많고 원 많은 세상 이야기 한 획도 놓치지 말고 써달라는 당부를 하셨다. 이렇듯이 노래와 더불어 살아온 나의 인생 일기장 속에는 한순간도 노래와 떨어진 사연이 없다는 것이다. 하루라도 글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 라는 안중근 의사의 명언처럼 나는 하루라도 노래를 듣지 않으면 귓속에 헌디가 생길 지경이니 이 순간도 삭막한 세상사 죄다 무시하고 그 시절 그 노래가 덧없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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