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의 공간

"저 나무들 중 내 것은 어느 것일까?"/정호 신부님(부산교구 괴정성당 주임)

松竹/김철이 2019. 11. 19. 15:46

"저 나무들 중 내 것은 어느 것일까?"




십자가를 이룰 나무들이 쌓여 있습니다. 그 중 어떤 것이라도 꺼내 들면 그것은 나의 십자가가 됩니다.


그 앞에서 한참을 살펴봅니다. 고민은 계속됩니다. 그런데 이 고민은 '저들 중 어느 것을 고를까?'에 대한 문제가 아닙니다. 과연 저 나무에 손을 댈 것인가가 고민입니다.


십자가를 어떻게 표현해도 그것을 위해서 내어 놓아야 하는 것은 결국 '나 자신'입니다. 십자가를 지는 것은 '죽을 정도'가 아니라 '죽는 것'이기 때문이고, 시늉이 아니라 실제여야 합니다.


고통을 참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것도 참을 수 있어야 할 이유가 내게 있어야 한다는 것인데, 그 이유가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는 것이 이 망설임의 이유입니다.


적어도 저 십자가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닮았다면 우리가 말하는 '구원'의 문제는 전적으로 하느님께 맡기고 죽는 것에 집중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에 무엇이 없더라도 말입니다. 사랑은 그렇게 하는 것이고 예수님의 십자가는 고통이 아닌 사랑의 실제 모델이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자기애'를 말하는 세상. 교회도 그것을 비켜가지 못하고 적당히, 혹은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모습을 보이는 현실은 주님의 말씀을 모른척 외면합니다.


나무에 손을 내밀어 움켜잡아야 합니다. 내가 아닌 하느님을, 그리고 세상과 사람들을 위해 저 나무를 꺼내들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