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의 공간

"노쇼"를 당하는 하늘나라 /정호 신부님(부산교구 괴정성당 주임)

松竹/김철이 2019. 11. 19. 15:35

"노쇼"를 당하는 하늘나라




 주문은 하고 나타나지 않는 이들. 그들을 위한 음식은 이미 마련이 되었고 자리도 식탁도 모두 그들을 기다리지만 아무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하늘나라를 말하고 모두 구원이라는 동일한 메뉴를 주문하지만 그 나라 앞에 '심판'이라는 과정을 받을 이들이 아예 나타나지 않는다면 하느님은 어떤 마음이 드실까요?


하늘나라의 음식을 먹는 이의 행복을 말하는 이에게 예수님이 전해주신 이야기는 그 집 앞에 아무도 없었다라는 말씀입니다.


하늘로 향한 길은 좁다고 배웠습니다. 그리고 그 문 조차도 좁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곳에 가는 것이 그리도 어렵다고 말해왔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곳에 가려고 아주 많이 모여 듭니다. 그리고 그것을 약속하는 이들이 나눠주는 표를 얻으려고 기를 쓰고 애를 씁니다.


그러나 정작 그 문 앞에서 기다리시는 하느님은 하염없이 식어가는 음식과 비어 있는 그 외길을 보고 계시고 사람들은 모두 함께 자신이 갖고 싶은 것을 향해 낭떠러지로 길을 만들어 걷습니다.


삶이 없으면 구원은 상상의 세계가 됩니다. 상상의 천국을 그리고 아무도 보지 못한 티켓을 만드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입니다. 성경이라는 대본을 손에 쥔 이들이 그려내는 수많은 천국의 그림 중 어느 것을 고르더라도 그곳에서 만나는 것은 탐욕에 젖어 거짓에 속아버린 자신일 겁니다.


기다리시는 하느님, 그 반대로 걷는 사람들. 하늘나라의 노쇼는 그렇게 이루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