松竹묵상글

사흘 만에 새 성전을 세우신 예수님처럼

松竹/김철이 2014. 6. 11. 11:12

    사흘 만에 새 성전을 세우신 예수님처럼 김철이/비안네 가톨릭 신앙을 가진이라면 누구나 흔히들 신부님들의 강론 중에서 우리들의 육신이 작은 성전이라는 말씀을 접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우리의 육신이 작은 성전이라면 우리들의 삶이 어떡해야 예수님의 거룩하신 성전다운 삶이란 말인가…. 창조주 하느님께서 당신 외아들, 우리 주 예수님의 피 끓는 기도조차 외면하신 채 당신 외아들을 팔아서 사신 우리 자신들의 삶이 어떻게 해야 주님의 그 크신 사랑에 조금이나마 보답하는 삶인지 또한, 어떻게 해야 이 천 년을 두고 죽음과 부활을 거듭하시며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예수님의 한없는 사랑에 보답하는 삶인지 많이 부족하지만, 이 창을 빌려 우리의 삶을 돌이켜 재조명해 보기로 하자. 우리네 하루 중 삶에서 매 순간 죄를 짓지만 무슨 일이든 내 탓으로 돌리라는 크신 가르침도 무시한 채 모든 잘못을 내 탓이 아니라 네 탓으로 돌린다는 것이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본다면 심지어 좋지 않은 일들로 우리 주위의 이들과 다툴 때도 마구 삿대질을 하며 다투는데 다섯 개의 손가락 중 엄지는 하늘을 향하고 검지는 상대를 향하며 나머지 세 개의 손가락은 자신을 향한다는 것이다. 이 일이 농담 섞인 우스꽝스러운 일이지만, 결코 농담으로만 받아들일 수만은 없지 않나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다섯 개의 손가락 중 엄지는 하늘을 향하고 검지는 상대를 향하며 나머지 세 개의 손가락은 삿대질을 하는 자신에게 향한다는 것인데, 엄지가 가리키는 하늘은 우리에게 손가락질을 받아야 할 아무런 이유도 잘못도 없다는 것이고 싸우는 상대를 향하는 검지의 뜻도 내 탓으로 돌리지 못하는 우리 인간들의 부족한 수치가 안일수 없다. 결국, 세 개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자신에겐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교만을 떤다는 것이다. 가톨릭 신앙을 지닌 이들 중 어떤 이는 주일 미사만 봉헌하는 이도 있고 또 어떤 이는 미사를 통해 예수님의 현존을 느끼기 위해 매일같이 미사를 봉헌하는 이도 있지만, 과연 이들 중 몇 사람의 신자가 일방적으로 우리에게 값없는 사랑을 쏟으시는 주님의 깊기만 하신 성심을 헤아려 드릴 수가 있을지 궁금하다. 이런 표현을 사용하기엔 정말 송구스럽고 죄송스럽지만 우리를 위하여 우리에게 당신 모든 것을 다 내어주신 예수님의 바보스러운 33년의 삶 속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배우고 느끼고 깨달아야 할까? 매일같이 반복되는 우리 죄악의 생활 속에 동참하시며 진정 안타까워 피눈물을 흘리실 우리 구세주 예수님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를 위하여 성부께 애끓는 기도를 바치고 계실 것이다. 그런 예수님의 한없는 사랑을 한순간이나마 생각한다면, 매년 반복되는 사순이고 부활이지만 올 한해만큼이라도 진정 주님의 수난을 깊이 묵상하며 창조주 하느님께서 지어내신 걸작품답게 더욱더 큰 희생과 인내의 생활로 눈이 죄를 짓게 하면 눈을 빼 던져버리고 손이 죄를 짓게 하면 손을 잘라 버리라 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우리 속에 아직도 자리 잡고 있는 부질없는 아집과 욕심은 빼 던져버리고 주님의 작은 성전답게 새로운 부활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사흘 만에 새 성전을 세우시겠다시는 예수님의 그 크신 믿음처럼….

'松竹묵상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가 매달린 십자가  (0) 2015.11.06
묵주 기도의 힘  (0) 2015.10.01
그 누가 예수 그리스도인가?  (0) 2014.03.06
4월의 하늘 아래  (0) 2013.08.22
예수성심성월을 맞이한 우리의 도리  (0) 2012.06.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