松竹♡수필

뿌리

松竹/김철이 2014. 2. 10. 14:01

뿌리

 

                                                      송죽/김철이

 

 누가 지어냈는지 잘도 지어냈지. 우리나라 옛 속담에 굴러 온 돌이 박힌 돌 뺀다는 가르침이 있다. 이 속담 속 가르침의 근원적인 뜻은 말 그대로 어디서 굴러먹다 왔는지 모를 존재가 오랫동안 한자리에 삶터를 잡아 생활하던 존재를 한순간에 밀쳐내고 떡 하니 그 자리를 차지하고 버티고 앉아서는 주인행세를 한다는 비꼬임의 말일 게다. 이 비꼬임의 속담처럼 족보와 뿌리가 통째 흔들리는 이 시대에 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주인의식도 없이 매 순간 금수강산을 넘보는 외래문화와 동고동락 함께 사는 한 사람으로 과연 우리가 생활하는 현재의 자리에서 만족하고 안주(安住)해도 좋을 것인지 여태 걸어온 우리의 뒤안길을 되돌아 보고자 한다.

 

 우리나라 온 국민의 가슴속엔 애써 외면하려 해도 결코 외면할 수 없는 분명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백의민족(白衣民族)의 혼과 얼을 타고난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쉬 공감(共感)하는 [근본]이다. 불과 몇십 년 전만 하여도 우리나라 부모들은 슬하의 자녀가 혼기(婚期)가 차고 공공연히 혼사(婚事)가 오갈 시면 당면과제로 들고 나오는 것이 돈도 명예도 아닌 근본이었다. 점차 국외 생활풍습과 문화가 들어오면서 언제부터인가 선하고 순하기만 했던 백의민족 가슴에도 물질제일주의(物質第一主義) 황금만능주의(黃金萬能主義) 열풍이 불어 돈이면 근본도 사람 됨됨이도 다 묻혀가는 세상으로 전락해 버렸지만, 먼 옛날 우리네 조상님들의 삶 속에 배여 있던 혼사풍습을 통해 사람이라면 왜 근본이 필수가 되어야 하고 근본 있는 가문을 우선으로 쳐주었던 그 근본적 이유를 요사이 세상 굴러가는 모양새를 보고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의 혈육은 아니지만, 높은 연세의 할머니가 길을 걷다 실수로 자신의 신발을 스쳐 밟았다 하여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퍼부으며 마시던 우유를 할머니 얼굴에다 무참히 끼얹는 여고생을 보는가 하면 옛 어른들 말씀대로 머리에 쇠똥도 벗겨지지 않은 고교생 대여섯 명이 보란 듯이 행길에서 손가락에 담배를 꼬나물고 뻐금거리는 모양을 지켜보다 못한 타 고교 교사가 말로 타이르자 아저씨가 뭔데 그러느냐며 무지막지하게 달려들어 그 교사에게 집단폭행을 가하는 눈뜨고 못 볼 몰골을 방송매체나 인터넷 보도를 통해 보고 있다. 사람이 모정이 절로 흐르는 어머니 젖을 먹고 자라야 하는데 발광 소가 전 세계를 제멋대로 활보하는 시대에 태어나 소젖을 먹고 자란 탓으로 돌리고 싶지만, 보도 화 되었던 할머니와 그 교사의 그 당시 심정을 떠올릴 때면 눈꼴이 절로 시고 오장 육부가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삭일 수가 없다.

 

 어느 시대 어느 시절 그 누가 지어냈는지 모르지만, 한낱 생선에 불과한 멸치와 오징어 사이에 혼사가 있었고 멸치 가문에서 작아도 뼈대 있는 가문이라며 뼈대 없는 오징어 가문과는 혼사를 치를 수 없다며 퇴짜를 놨다는 우화도 있듯이 양반 타령 가문 타령 근본 타령으로 금쪽같은 세월을 물 흘려보내듯 흘려보냈던 옛 조상님들의 삶의 지표를 그리 달갑게 받아들이진 않지만, 먼 옛날 국혼(國婚)이 행해질 때마다 나라님의 명으로 명문가문의 자녀로 하여금 황실의 대를 잇기 위해 전국방방곡곡 방(榜)을 붙이고 전국 명문가와 벼슬아치들의 아들딸 중 인품이 특출한 총각 처녀를 간택(揀擇)하여 왕실의 혼인을 치렀던 풍습과 양반과 평민 가에서 혼사를 치를 때마다 앞서 행하는 일 중 근본 있고 행실 곧은 총각 처녀를 선별하여 자기 가문의 대를 잊기 위해 매파(媒婆)를 놓던 시절의 생활풍습을 능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차마 울 수도 웃을 수도 없는 실화 한 편을 소개하고 이 실화 속 등장인물들이 어떤 잘못과 실수를 통해 어떤 시련과 고통을 겪어야 했는지 똑바로 직시하고 함께 돌이켜 반성해 보기로 하자. 35년간의 일제 강 정기(日帝强占期)가 숱한 아픔과 딱지 굳은 상처를 뒤로 미루어 놓은 채 대단원의 막을 내리고 온 국민이 해방의 기쁨으로 들떠 있을 때 명문가로 소문이 자자했던 한 가정의 4대 독자 외아들이 개화바람을 타고 지방에서 서울로 흔치 않은 유학을 가게 되었다. 본래부터 타고나기를 명문가에 태어났고 대대로 재산이 많기로 소문이 자자했던 가문이라 4대 독자는 다른 사람들이 35년여 일제 강 정기(日帝强占期)동안 갖은 치욕적인 수모와 아픔을 겪으며 비명을 지르고 있을 즘 부모 잘 만난 덕에 식민지(植民地) 국민의 신분답지 않게 호의호식하며 생활하였다. 4대 독자는 서울 명문대학 3학년 되던 해 친구의 소개로 가난하고 명문가에서 흔히 말하는 근본 없는 가문의 여식을 사귀게 되어 장래를 약속했고 마침내 부모님께 소개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부모는 근본조차 불투명한 가문의 여식을 며느리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애정의 불이 붙은 청춘남녀의 가슴은 식힐 수가 없었다. 부모의 반대를 극복하고 결혼한 4대 독자는 나름대로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였고 자신의 부모와 마찬가지로 슬하에 5대 독자를 두었다. 그렇지만, 이 일이 다가 아니었다. 무탈하게 성장한 5대 독자는 결혼 정녕 기가 되어 잠시 국외여행을 다녀온다며 출국했었는데 돌아올 땐 노란 머리에 파란 눈의 아가씨와 함께 귀국하여서 하는 말이 어처구니가 없었다. 파란 눈의 아가씨와 결혼하는 건 물론 아가씨 부모의 슬하에 자식이라곤 아가씨뿐이라 결혼 후 출국하여 아가씨 부모와 함께 생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4대 독자는 그 옛날 자신의 부모처럼 아들의 결혼을 결사반대하였으나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는 법이라 울며 겨자 먹기로 아들의 결혼을 허락하기에 이르렀다. 결혼 후 출국한 5대 독자는 몇 년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더니 풍문에 소문을 전해 듣자니 자신이 태어나고 자랐던 우리나라 국적을 헌신짝 벗어 던지듯 버리고 아내의 나라 국적을 취득하여 타국의 국민으로 기화(氣化)했다는 것이었다. 이 실화를 보아 근본과 뿌리를 중요시하지 않는 자는 자신의 행실로 눈물을 흘리게 된다는 사실이 증명된 셈이다.

 

 뿌리와 근본이 실종된 이 시대에 숨 쉬며 사는 한 동행인으로서 지금 이 시대가 마냥 이대로 흘러가도 좋은 것일까? 그 끝은 어떤 모습 어떤 모양일까 하고 가끔 혼자 되 내여 본다. 문학의 한 장르의 일부분이지만, 알렉스 헤일리 원작의 소설을 텔레비전 미니시리즈로 만든 뿌리에서 미국으로 끌려온 아프리카 소년 노예인 쿤타킨테는 자신의 근본과 뿌리를 찾아 갖은 역경과 시련에 맞서 피가 터지게 싸워 끝내 자신이 태어난 고향, 아프리카로 돌아가듯 한낱 짐승에 불과하고 미물에 불과한 여우도 생을 다해 죽을 때면 태어난 굴을 향해 머리를 두고 연어는 민물에서 태어난 뒤 바다로 나가 일생의 대부분을 보내고 생의 마지막이 가까워질 때면 죽을 힘을 다해 자신이 태어났던 강을 향해 거슬러 올라가 종족 보존을 산란한 다음 생의 최후를 맞으며 자신의 남은 살점마저 자신의 분신인 치어들에게 내어준다고 하는데 한 가족 내에서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다문화 가정이 날로 늘고 있는 이 시대에 사는 이즈음 국적조차 불투명한 외래문화(外來文化)를 포함해서 성도 이름도 정확지 않은 외국 생활풍습과 갖은 삶의 형태들이 홍수처럼 밀려 들어와 삼천리금수강산을 통째 뒤흔들고 있는 이때, 우리나라 우리 아이들은 지금쯤 어디서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