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요리

발로 뛰어 발굴한 숨은 맛집(30) 부산시 부산진구 당감3동 '진수국시'

松竹/김철이 2011. 7. 8. 07:01

발로 뛰어 발굴한 숨은 맛집(30) 부산시 부산진구 당감3동 '진수국시'

  • 월간외식경영 글·이정훈 기자 사진·변귀섭 기자

 

 

 

 

후루룩 메밀 소바 한 가락에서 얻은 소박한 깨달음

서울 강남에 우동과 소바(蕎麥, 원래 메밀 자체를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소바키리(蕎麥切)’, 즉 일본식 메밀국수를 가리키는 말로 널리 쓰임)전문점이 있었다. 메밀 소바를 무척 좋아했던 지인 한 사람은 아이들까지 데리고 이 집에 갈만큼 충성도 높은 고객이었다. 일본 강점기 때 일본인과 동업으로 개점하여 80년이 넘었다는 집인데 주인장 할머니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뜨는 바람에 식당이 문을 닫았다. 이 집은 가다랑어포(가츠오부시)가 아니라 우리 멸치로 만든 한국형 쯔유로 유명했다. 그럼에도 메밀의 제 맛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는데 식당이 없어지자 지인이 무척 아쉬워하였다. 그랬던 그가 얼마 전에 최근 부산에서 괜찮은 메밀 소바를 맛보았다고 자랑하면서 내게도 찾아가서 눈을 감고 먹어보라고 권했다.

일, 조선서 밀가루 섞는 법 전수받아 에도시대에 ‘소바키리’ 탄생시켜
요즘 메밀이 뜨고 있다. 각종 비타민과 성인병 예방에 좋다는 루틴(rutin)이 들어 있는 참살이 식재료여서인지 각광을 받고 있다. 건강이란 개념이 외식업의 한 흐름이 된 지는 퍽 오래지만 최근에는 메밀 선호 경향이 뚜렷하다. 더구나 여름이라는 계절적 요인으로 메밀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른다.

요즘 우리가 즐겨 먹는 메밀 소바는 일본에서 들어왔다. 그러나 일본에서 메밀 소바가 나올 수 있도록 결정적인 구실을 한 것은 우리나라다. 임란을 주도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소바가키를 즐겼다고 하는데 소바가키는 소바키리가 나오기 직전, 조악한 형태의 메밀 음식이었다. 임란 이후, 에도시대 초기(1624~1644)에 조선의 승려 원진(元珍)이 일본 나라(奈良)의 도다이지(東大寺)에서 메밀가루에 밀가루를 연결제로 섞는 방법을 전수했다는 이야기가 일본에 전한다.

메밀가루만으로는 그대로 풀어져버리기 때문에 면을 만들기 힘들다. 이를 보완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에도시대 초기에 나타났다. 쌀로 풀을 쑤어 넣기도 하고, 두부나 계란을 넣기도 하였다. 마는 효과가 좋았지만 가격이 너무 비쌌다. 결국 원진 스님이 가르쳐준 밀가루가 일본에서 메밀의 보완재로 채택되고 정착하였다. 일본 메밀 소바에는 조선의 원천기술이 들어가 있는 셈이다.

메밀 소바 만들기, 반죽 등 쉽지 않아 긴 수련기간 필요
문제는 밀가루와 메밀의 배합 비율. 시행착오 끝에 1664년경에 가장 이상적인 배합비인 메밀 8대 밀가루 2의 이른바 니하치소바(にはち-そば)가 나왔다. 그러나 악화는 양화를 구축하는 법. 뒤에 메밀과 밀가루의 비율을 거꾸로 20% : 80%로 만든 갸쿠니하치(逆二八)가 나오면서 ‘니하치소바’가 싸구려 소바로 각인되어 인기가 떨어지자 지금처럼 그냥 ‘소바’로 불리게 되었다.

메밀 소바 만들기의 핵심은 첫째가 개기, 둘째가 밀기, 셋째가 썰기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반죽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다. 메밀 소바는 밀가루 함량이 적기 때문에 글루텐 형성이 잘 안 되어 반죽할 때 일정하게 리듬감을 주지 않으면 반죽이 트기 쉽다. 일본 후쿠오카에서 <신슈소바 무라타>를 운영하는 무라타 타카히사(村田隆久) 사장은 갈라지지 않게 반죽을 해서 1mm 정도 두께로 얇게 밀 수 있는 기술을 제대로 습득하려면 몇 년 정도의 수련과정이 필요하다고 한다. 자신의 경우 10년 동안 집중적으로 연마한 후 지금의 가게를 차렸다고 한다.

에도시대 중기에 메밀 소바의 인기몰이에 힘입어 가게가 크게 늘었다. 메이지시대로 접어들기 직전인 19세기 중후반, 도쿄의 메밀 소바 집이 무려 3천700여 개로 불어났다. 오늘날 도쿄의 소바점은 약 6천여 개로 추정되는데 일본에서 메밀 소바는 행운을 상징하는 대중음식으로, 섣달 그믐날이나 이사하고 난 뒤에 이웃과 함께 나눠먹는다.(힛코시소바) 메밀 소바는 생각보다 만들기 쉬운 음식이 아니다. 메밀에 밀가루 섞는 법을 우리에게 배운 일본은 수백 년에 걸쳐 좀 더 맛있게 메밀 먹는 방법을 차근차근 연구했다. 이제 그 방법을 우리가 배워야 하는 현실이 되었다.

명품 소바 뒤엔 제면의 고수, 정정옥 씨의 숨은 노력이
부산 당감동의 <진수국시>는 개점한 지 얼마 되지 않는 신출내기 면 전문점이다. 그러나 면식 메뉴 수준은 기성 식당을 뺨치고도 남음이 있었다. 특히 의외로 깊은 메밀 소바 맛 뒤에는 역시 깊은 내공의 소유자가 숨어있었다. 정정옥(76) 씨가 바로 그였다. 최고의 메밀 소바를 만들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을 간직한 주인장 박진수 사장이 전국을 떠돌며 수소문해서 삼고초려 끝에 이 식당 면식(麵食) 고문으로 위촉한 제면 분야 원로이자 전문가다.

정정옥 고문은 원래 일본과 고철을 수출․입 했던 무역업자였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면식을 즐기고 면 만들기에 관심이 많았다. 일본에 출장 갈 때마다 시간이 남으면 취미삼아 소바나 우동을 맛보고 면 요리 강좌를 틈나는 대로 들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경험과 지식이 축적되자 면에 관한 한 일가견을 이루게 되었다. 면식의 매력에 점점 빠져들던 정 고문은 드디어 일본 제면기계 한국대리점을 차리고 서울 강남에 고급 우동 전문점을 내기에 이른다. 물론 여전히 본업은 무역업이었지만 이 정도면 취미 차원을 넘어선 것이었다.

제면의 매력에 빠져든 정 고문은 자연스럽게 각종 면식의 조리법과 밀가루의 물성, 소스 등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일본의 유수 면류 가공업체와 안면을 터, 제면과 면 관련 소스 만드는 방법도 어렵게 배웠다. 자연스럽게 부업은 그의 주업으로 전환되었다. 정정옥 면식 고문은 좋은 면을 만들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으로 작업장의 청결, 항온 항습 환경, 좋은 물과 소금을 들었다.

최적 환경 조성해 ‘최고의 소바 만들겠다’ 별러
정 고문은 이른 봄부터 지금까지 <진수국시>의 완벽한 메밀소바(6000원) 완성을 위해 직접 메뉴 콘셉트를 제시하고 조리 담당자들을 조련해왔다. 밀가루의 5배가 넘는 비싼 양질의 메밀을 고르고, 면을 삶는 솥 안에 모터를 장착, 물을 계속 회전시켜 익힐 때 열이 면에 고르게 전달되도록 했다.

메밀 소바는 메밀을 바로 빻아 바로 만들어서 바로 삶아먹어야 맛있다. 이 집 메밀은 18kg용으로 포장된 것을 들여온다. 포장을 한 번 풀면 바로 반죽해서 삶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한편, 반죽을 하거나 면을 끓일 때 쓰는 물은 면의 질을 크게 좌우하는 핵심요소다. 이 집은 지하 150m 암반에서 취수한 양질의 물을 쓴다고 한다. 이미 수질검사를 통해 합격통지를 받았는데 이 동네(당감동)가 예로부터 물이 달고 맛 좋기로 소문났었다고 한다. 소금도 신안에서 나온 3년 이상 간수를 뺀 소금을 확보해두었다.

이 집 메밀 면류는 메밀 함량이 38%다. 이 비율이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면발 식감을 유지하면서 메밀의 풍미도 즐길 수 있는 적정비율이라고 한다. 메밀 소바의 면발 두께는 1.1mm로 뽑고 있다. 수제면은 아니지만 그 물성의 차이는 크지 않은 듯 했다. 1998년에 나온 하야시 준신(林順信)의 「에도 도쿄 구르메 세시기(江戶東京グールメ歲時記)」라는 책에 보면 좋은 메밀 소바의 맛 10가지 기준이 나온다. 잘 씹히고, 탄력 있고, 쫄깃하며, 오동통하고, 길게 이어지고, 모양이 아름답고, 유연하며, 단맛이 나고, 색이 곱고, 메밀 향이 나야 한다는 것이다. 서로 상호모순적인 기준도 일부 있지만 정 고문이 만들고자 하는 메밀 소바의 모습이기도 하다.


탄력 있는 면발과 메밀 풍미 두루 갖춘 소바, 맞춤형 쯔유에 찍어 먹어보니
잘 숙성시킨 간장에 가다랑어와 멸치, 채소 즙, 기타 재료 등으로 국물을 낸 쯔유도 너무 짜거나 달지 않고 우리 입맛에는 적당했다. 일본 쯔유는 대체로 짜고 우리나라 쯔유는 지나치게 단 경우가 많았는데 중용의 길을 택한 쯔유다. 실제 먹어보니 이 집 소바 면발이 하야시 준신의 기준에 부합하는 듯 했다. 10가지나 되는 그 오묘한 맛들을 일일이 느껴가면서 먹으려니 정신집중을 해야 할 판이었다.

또 한 젓가락 집어 쯔유에 찍어서 들어올렸다. 각자 고향을 떠난 밀, 메밀, 물, 소금이 조리사의 손을 거쳐 내 젓가락 위에서 메밀 소바로 만났다. 천천히 입에 넣었다. 원진 스님의 정성과 수백 년간 이어온 일본 소바 장인들의 공력과 정정옥 고문의 명품 소바에 대한 집념이 혀끝에서 느껴졌다. 나의 뇌가 감지한 미각은 바로 이런 숱한 인연의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숙연해졌다. 지인이 말한 ‘눈을 감고 먹어보라’는 의미를 알 것 같았다. 지인은 벌써 먼저 깨달았던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 ‘눈을 감고 먹어보라’는 화두를 건넨 모양이다.

이 집의 메밀 소바 면발은 대체로 어두운 유백색에 가깝다. 다른 메밀 전문점의 메밀 소바나 막국수가 검은 색에 가까운 것과 다른 점이다. 바나나의 껍질은 노랗지만 과육은 흰색이다. 바나나우유는 껍질로 만든 것이 아니라면 흰색이어야 맞다. 메밀도 마찬가지. 면발이 검어야 진짜 메밀로 만들었다는 편견을 버리자. 메밀 소바는 껍질이 아니라 겉껍질을 벗겨낸 메밀 알갱이로 만든 것이다. 

메밀소바 외에도 메밀만두(8개, 4000원), 메밀막국수(5500원), 쟁반메밀국수(8000원) 등의 메밀 메뉴가 있고, 콩국수(7000원), 잔치국수(4000원), 칼국수(5000원) 등의 일반 면식 메뉴가 있다. 메밀소바나 칼국수를 시킨 손님에게는 주먹만 한 유부초밥을 서비스로 하나씩 맛보게 해줘, 한 끼 식사로 충분하다. 051-898-3344

 

 

 

 

출처: 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