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요리

발로 뛰어 발굴한 숨은 맛집 (27) 부산시 해운대구 중동 '해운대옛날팥빙수'

松竹/김철이 2011. 6. 15. 07:37

발로 뛰어 발굴한 숨은 맛집 (27) 부산시 해운대구 중동 '해운대옛날팥빙수'

  • 월간외식경영 글·이정훈 기자 사진·변귀섭 기자

 

 

 

소박하고 촌스러운 팥빙수 맛의 미덕

이열치열? 옛 사람들도 여름에는 얼음이 먹고 싶었다

나는 어느 한의사 선생님이 지난 여름에 했던 일을 기억하고 있다. 그는 배탈이 나 찾아오는 환자들에게 ‘너무 찬 음식을 많이 섭취하지 말라’고 일렀다. 그러면서 본인은 퇴근할 때마다 아이스크림 점에 들러 팥빙수 1인분을 즉석에서 먹고 3인분을 포장해서 집으로 사가지고 갔다. 부인과 아이의 몫이라면 2인분만 사도 되는데 꼭 3인분씩 샀다.

여름철 더위는 이열치열 방식으로 다스리는 것이 우리의 전통적인 피서법이지만 찬 음식에 대한 유혹을 뿌리칠 수는 없다. 그리고 찬 음식이 체감 더위를 빨리 누그러뜨리는 데에 효과가 큰 것도 사실이다. 팥빙수로 자신의 ‘폭서증’을 처방한 한의사 선생님처럼 건강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지나치게 먹지만 않는 다면 우리도 시원하게 여름을 날 수 있다.

무지막지한 더위에 대응해서 바로 효과를 볼 수 있는 찬 음식이 여럿 있지만 역시 팥빙수만한 것도 드물다. 인간이 더운 여름철에 찬 얼음을 먹고 싶어 했던 욕망은 하늘을 날고 싶어 했던 것만큼이나 역사가 깊다. 중국에서는 기원전 3천 년 전부터 눈이나 얼음에 꿀과 과일즙을 섞어 먹었다고 하고, 알렉산더 대왕이 원정길에서 지친 병사들을 위해 눈에 우유와 꿀을 섞어 먹였다거나 네로황제가 알프스의 만년설을 먹었다고도 하지만 정확한 사실은 알 수 없다. 다만 오래 전부터 여름에도 시원한 얼음을 먹기 위해 동서양이 모두 애를 쓴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우리 조상들도 오래 전부터 얼음 보관창고를 짓고, 겨울에 채빙을 하여 보관해두었다가 여름에 꺼내먹었다. 신라의 노례왕(서기 24∼57년) 때 ‘보습과 수레와 함께 얼음 창고도 만들었다’는 기록이「삼국유사」에 있다. 네로 황제와 같은 시대다. 「삼국사기」신라본기에는 지증왕 6년(505)에 빙고전(氷庫典)이라는 관청에 얼음을 저장하라고 명을 내렸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창덕궁에 있는 내빙고와 궁 밖의 동․서빙고를 두고 얼음을 저장하였다. 지금의 서울 서빙고동에 있는 서빙고와 옥수동에 있는 동빙고가 그것이다. 물론 국가의 의례와 왕실에서 사용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밖에도 조선 영조시대에 축조한 것으로 보이는 경북 경주의 석빙고를 비롯해 얼음 저장 창고가 몇 군데 전해져 오고 있다. 이처럼 우리나라에도 여름에 얼음을 먹었던 구체적인 기록과 유적지가 생생하게 남아있다.

직접 삶은 팥과 통얼음으로 만든 기본에 충실한 팥빙수

19세기에 들어와 냉동기가 발명되면서 본격적으로 제빙기술이 발전하고 그 여파가 식생활에도 미쳤다. 굳이 겨울에 얼음을 저장해두었다가 먹을 필요가 없어졌다. 원하면 언제든지 계절에 관계없이 얼음을 만들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얼음을 갈아서 그릇에 수북하게 넣고 팥과 여러 가지 토핑 재료를 넣어서 시원한 맛을 내는 요즘의  팥빙수 형태는 일제 강점기 때 들어왔다. 점포와 시대에 따라서 토핑 재료는 다양하고 변화도 많았지만 얼음과 팥의 동거라는 기본 형태는 변함이 없다.

부산 <해운대옛날팥빙수>는 이런 기본에 충실한 팥빙수를 만든다. 우선 얼음을 통얼음으로 쓴다. 각얼음은 구하기 쉽고 취급이 간편하지만, 얼음을 깍는 과정에서 쉽게 깨져 입자가 굵고 균일하지 않다. 반면, 통얼음은 저장과 취급이 불편하지만 아주 곱게 얼음가루가 갈려나와 빙수를 먹을 때 목넘김이 훨씬 부드럽다.

팥도 최상품을 구입하여 2시간을 불렸다가 압력솥에 넣고, 충분히 익히되 터지지 않을 만큼 삶아서 팥의 맛과 향을 그대로 향유할 수 있다. 간과 삶는 시간을 잘 맞추어야 제 맛이 나온다. 너무 싱거워도 안 되지만 너무 달아도 안 된다. 요즘 팥빙수에는 대개 깡통에 들어있는 기성품으로 나온 팥시럽을 쓴다. 이에 비하면 직접 삶은 팥은 단맛은 적지만 팥의 본래 맛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조금 아쉬운 단맛을 보충해주는 것이 사과 젤리다. 가을 사과 철에 경남 거창에서 후지 품종을 매입, 저장해두었다가 필요할 때마다 설탕을 넣고 졸여 젤리로 만들어서 쓴다.

팥빙수는 간단하다. 얼음에 우유를 넣고 주인장 강연화(51) 씨가 직접 만든 팥과 사과 젤리가 들어가는 것이 전부다. 색상이 화려하지 않고 모양이 야단스럽지도 않다. 맛도 자극적이거나 특별한 맛이 아니다. 주인장 강씨의 말에 따르면 ‘소박하고 촌스런 맛’이다. 그런데 이 집을 찾는 사람들의 반응이 뭉근하다. 몇 번 먹어본 사람은 반드시 꼭 온다. 자주는 아니더라도 은근하면서 꾸준히 찾아온다. 그런 손님들의 모습이 이 집의 팥빙수 맛과 닮았다.

덜 달고 부드러운 단팥죽, 환자식으로도 좋아

팥빙수는  제과점이나 아이스크림 전문점 등에서 여름철에만 곁다리로 파는 것이 보통인데  이 집은 달랑 팥빙수 한 가지만 파는 그야말로 ‘팥빙수 전문점’이다. 그러다보니 겨울철에는 아무래도 손님의 발길이 뜸할 수밖에 없어 대체 메뉴로 하나 더 만든 것이 단팥죽이다. 사실, 일본에서 처음 팥빙수가 나오게 된 것도 얼음에 단팥죽을 식혀 부은 것이 시초라고 한다. 그렇다면 단팥죽은 팥빙수의 어머니 쯤 된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단팥죽은 우리의 전통음식인 팥죽과는 혈통이 다르지만 팥을 주재료로 쓴다는 점에서는 같다. 팥죽이 겨울철 동지(冬至)의 절식으로 쓰였고 평시에는 별식으로 먹는 한 끼 식사였던 반면, 단팥죽은 간식거리로 사랑받아 왔다. 주인장, 강씨가 우량 찹쌀을 직접 구입하여 가루를 내 죽을 끓이고, 단팥죽에 들어가는 찹쌀떡도 방앗간에서 직접 뽑아 와서 냉동상태로 두었다가 꺼내 쓴다.

단팥죽은 겨울철에 많이 팔리지만 사철 언제든지 맛볼 수 있다. 달콤한 팥 맛도 좋지만 찹쌀떡의 차진 맛도 씹을수록 잇몸에 경쾌하게 와 닿는다. 맛이 순하고 부드러워 특히 병원에 문병을 가는 손님들이 포장으로 구입해 가는 경우가 많다.

주인장, 강씨는 자꾸만 오르는 설탕 값과 팥 값 때문에 최근에 팥빙수와 단팥죽 값을 종전의 2,000원에서 2,500원으로 부득이 올렸다고 한다. 식사를 끝내고 커피 한 잔을 마셔도 천 원짜리 몇 장은 들어간다. 강씨의 정성과 손맛에 비하면 그다지 비싸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이 집은 동해남부선이 통과하는 기찻길 옆에 오막살이처럼 허름하다. 집 앞에 있는 나무도 그렇고 그 아래의 평상도 촌스럽다. 하지만 그곳에 걸터앉아 팥빙수를 떠먹는 사람들의 얼굴은 평화롭고 행복해 보인다.

옛날에는 대개 국가 주도로 얼음 창고를 지어 겨울에 얼음을 떠서 저장해두었다. 겨울철 채빙작업은 목숨까지 걸 정도의 힘든 노역이었다. 이렇게 귀한 여름철 얼음은 극히 제한된 최상류층의 사람만이 제한된 양만 먹을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여염집마다 모두 ‘가빙고(냉장고)’를 집 안에 들여놓고 사는 세상이 되었다.

당신이 오늘 별다른 생각 없이 사먹은 팥빙수 한 그릇은 불과 한 세기 이전 사람들에겐 한여름철의 판타지였다. 왕이나 귀족도 마음 놓고 못 먹었던 것을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것, 얼마나 통쾌하고 시원한 일인가. 여름이 초장부터 덥다. 그러나 팥빙수를 한 입 떠먹는 순간, 당신은 왕이다. 좀 더 품위 있게 드시길….  070) 8920-3154

 

 

 

출처: 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