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요리

발로 뛰어 발굴한 숨은 맛집 (26) 강원도 화천군 간동면 '월미 달팽이해장국'

松竹/김철이 2011. 6. 11. 07:32

발로 뛰어 발굴한 숨은 맛집 (26) 강원도 화천군 간동면 '월미 달팽이해장국'

  • 월간외식경영 글·이정훈 기자 사진·변귀섭 기자

 

사부곡(思夫曲)으로 끓인 다슬기해장국의 깊은 맛

달팽이(다슬기)해장국. 쫄깃하게 씹히는 다슬기 양도 다른 집에 비해 제법 푸짐하다.

춘천을 지나 화천으로 접어들어서도 몇 개의 고개를 넘고 몇 번 물굽이를 돌았다. 구만리 발전소 인근을 지나는데 주인장인 듯한 아주머니가 식당 앞에서 배추와 아욱을 다듬고 있었다. <월미 달팽이해장국>의 주인장 정원만(53) 씨였다. 전날 화천에 사는 분에게 화천 사람들이 즐겨 찾아가는 식당이 어디냐고 물어 몇 군데 추천받은 곳 중 이곳이 포함되어 있었다. 찾아온 연유를 이야기 했더니 손사래를 친다. 여기저기 세상에 알려지는 게 싫다는 거였다. 기왕 여기까지 왔으니 달팽이해장국이나 먹고 가라며 식당 안으로 기자를 데리고 들어갔다.

이 집 달팽이해장국 맛의 핵심은 정씨가 담근 장에서 비롯한다.

천덕꾸러기 달팽이(다슬기)가 귀족으로

원래 이 식당은 정씨의 시부모가 50여 년 전부터 운영했다. 직업군인으로 제대한 시아버지는 현역시절부터 낚시 광이었다. 휴일이나 휴가 때면 자녀들을 데리고 인천 월미도로 가서 바다낚시를 즐겼다. 전역과 함께 시아버지는 재직했던 부대 인근에 식당을 차렸는데 월미도에 대한 애정을 담아 식당이름을 <월미식당>으로 붙였다. 3남 2녀 중 둘째인 정씨의 남편도 아버지를 닮았는지 고기 잡는 일을 무척 즐겼다.

아들과 아버지가 배(월미호)를 타고 인근 강이나 호수에서 민물고기를 잡아오면 어머니가 월미식당에서 팔았다. 매운탕 맛이 괜찮아 장사는 꽤 잘 되었다. 돈도 좀 벌어 지금의 자리에 새 식당 건물을 짓고 이전할 정도였다. 1986년에 정원만 씨는 이 집의 고기 잡는 둘째 아들과 결혼을 하였고, 결혼한 지 3일 째 되던 날부터 이 식당에 나왔다. 당시에는 남편이 잡아온 민물고기로 만든 매운탕이 식당의 주 메뉴였다.

그런데 달팽이(다슬기)가 자꾸 물고기와 함께 그물에 조금씩 걸려 올라왔다. 잡은 달팽이를 매번 버리자니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는 잡은 달팽이를 버리지 않고 기억을 더듬어 예전 친정어머니가 만들었던 방법대로 끓여보았다. 맛을 본 손님들이 오히려 매운탕보다 낫다고 하는 게 아닌가. 매운탕 단골손님들도 언제부터인지 ‘달팽이 해장국’만 찾았다. 이때부터 이 집의 메뉴가 한 가지 더 늘어나게 된다.

정원만씨. 조용한 산골의 한적한 식당이 12시만 되면 매일같이 어디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쏟아져 들어오는지 참으로 미스터리다.

남편 돌연사 계기, 오직 ‘달팽이해장국’만 취급

시부모님들이 연로하시면서 아무래도 정씨 부부가 식당운영을 주도해나갔다. 시부모님들이 그랬듯이 남편 신씨는 배를 타고 나가 고기를 잡아오고 정씨는 식당에서 남편이 잡아온 물고기로 음식을 만들었다. 식당은 그런대로 잘 되었다. 다만 결혼 후 오랫동안 아이가 생기지 않아 마음고생을 했다. 그런데 뒤늦게 정씨가 딸을 낳았다. 남편 신씨는 보물처럼 딸을 무척 애지중지 아꼈다.

정씨의 딸 은혜는 어느덧 다섯 살이 되어 유아원에 다니게 되었다. 아침마다 남편 신씨는 일어나자마자 식당 문을 열고 영업 준비를 해놓고서 9시가 되면 은혜를 차에 태워 읍내에 있는 유아원에 데려다주고 왔다. 그런데 하루는 9시가 넘었는데도 남편이 일어나지 않았다. 처음에는 여느 때처럼 장난을 치는 줄 알았다. 신씨를 깨우려고 방에 들어가 보니 남편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정씨는 딛고 있는 땅이 한없이 꺼져들고 있음을 느꼈다. 막막했다.

갑작스런 남편의 사망으로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지만 어린 딸 은혜를 봐서라도 열심히 살아야 했다. 매운탕 재료를 대주던 남편의 부재로 매운탕을 포기하고 이때부터 오직 달팽이(다슬기)해장국(6000원) 한 가지만 팔았다. 식당이름도 ‘월미식당’에서 ‘월미 달팽이해장국’이 된다. 그때만 해도 동네에서 잡은 다슬기의 양이 많아 남는 다슬기를 다른 지역에 내다 팔았다. 하지만 지금은 이 동네에서 4가구만 어로작업 허가를 받아 잡는 양이 퍽 적다. 그래서 요즘에는 홍천강 등에서 잡는 다슬기까지 가져다 쓰고 있다고 한다.

해장국을 끓이는 방식은 친정어머니가 했던 방법이라고 하는데, 미리 아욱을 넣고 끓이면서 서서히 장을 풀어 넣는다. 아욱은 비타민과 단백질, 지방, 칼슘, 무기질이 풍부하여 어린이 발육촉진에 좋은 식품이다. 열량이 낮아 다이어트 식품으로도 우수한 식재료다.

자꾸만 끌리는 텁텁한 구수함은 ‘막장’과 아욱의 힘

이 집 달팽이해장국 맛의 핵심은 정씨가 담근 장에서 비롯한다. 스스로 ‘막장’이라고 부르며 겸손해하지만, 해장국의 담백하고 텁텁한 구수함이 압도하는 국물 맛은 아무래도 장맛이다. 특히 다른 지역에서 다슬기 해장국을 먹을 때마다 늘 비린내와 씁쓸함이 아쉬웠는데 정씨의 막장이 해장국의 이런 잡맛을 잡아주고 있었다. 쫄깃하게 씹히는 다슬기 양도 다른 집에 비해 제법 푸짐하다.

해장국을 끓이는 방식은 친정어머니가 했던 방법이라고 하는데, 미리 아욱을 넣고 끓이면서 서서히 장을 풀어 넣는다. 정씨에 따르면 아욱과 다슬기가 궁합이 아주 잘 맞기 때문에 아욱 가격이 비쌀 때도 자신의 해장국에는 늘 아욱을 넣는다고 한다. 이렇게 끓여낸 국물은 손님의 주문에 따라 뚝배기에 미리 삶아둔 다슬기와 생 부추를 넣고 토렴을 하여 다시 한 번 끓여서 내간다.

아욱은 비타민과 단백질, 지방, 칼슘, 무기질이 풍부하여 어린이 발육촉진에 좋은 식품이다. 열량이 낮아 다이어트 식품으로도 우수한 식재료다. 정씨의 말처럼 다슬기와 궁합이 잘 맞아서인지 입에서 부드럽게 넘어간 아욱은 뱃속도 편하게 해주었다. 해장기능을 강화하고자 얼큰하게 먹고 싶으면 썬 풋고추를 넣어 먹는다.

함께 나오는 김치와 깍두기도 해장국의 체면을 손상시키지 않을 만큼 맛이 들었다. 깍두기를 국물과 함께 넣어 먹었더니 그 또한 별미였다. 꽉꽉 눌러 담은 공기밥 한 그릇이 어느새 비어간다. 그제야 창밖의 북한강 물줄기와 강 건너 봄 산의 경치가 한눈에 들어왔다. 웬만큼 배가 찬 모양이다. 아무리 보아도 싫지 않은 풍광이 밥상 앞에 펼쳐져 있다.

‘입맛이 떨어졌다’거나 ‘바람 쐴 만한 곳이 없다’고 느껴질 때 북한강변의 시원한 바람과 이 집의 달팽이해장국은 특효약이 될 것이다. 그렇다고 아무 때나 가면 안 된다. 일요일은 쉬고 평일에도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만 영업을 한다. 또 가급적 12시부터 1시 사이는 피하는 것이 좋다. 예약 손님들 때문에 빈자리가 없다. 아니면 미리 예약을 하는 것도 한 방법. 조용한 산골의 한적한 식당이 12시만 되면 매일같이 어디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쏟아져 들어오는지 참으로 미스터리다. ‘혹부리영감’에 나오는 도깨비들처럼. 애주가라면 이 집에선 술을 팔지 않는다는 점도 미리 알고 가는 것이 좋을 듯.

월미호. 한창 때는 정씨 남편과 함께 인근의 강과 호수를 누비며 물고기를 잡아주던 배였다.

아빠의 배

이 집 옆에는 낡고 작은 배가 한 척 있다. 한창 때는 정씨 남편과 함께 인근의 강과 호수를 누비며 이 집에서 쓸 물고기를 잡아주던 배였다. 몇 년 전 집 옆에 놓여있는 주인 잃은 배를 보고 어떤 이가 팔라고 했다. 정씨는 별 생각 없이 30만원을 받고 팔았다. 그런데 학교에서 돌아온 딸 은혜가 어두운 낯빛으로 엄마에게 물었다. 왜 아빠 배가 안 보이느냐고. 자초지종을 얘기하자 은혜는 노발대발하면서 빨리 그 배를 당장 가져오라며 엉엉 울었다. 어렸을 적 아빠랑 그 배에서 놀기도 하고, 아빠랑 그 배를 타고 강에 나가 고기도 함께 잡았다면서….

정씨는 할 수 없이 ‘월미호’를 사간 사람을 수소문 끝에 찾아가서 사정 이야기를 하고 되가져왔다. 어머니 정씨마저도 딸의 속이 그렇게 깊을 줄은 몰랐다. 당시 너덧 살밖에 안 되었던 딸이 아빠에 대한 추억을 제 가슴속에 그토록 애틋하게 간직하고 있으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은혜는 그동안 혼자서 그 배를 타고 가서 아빠를 만나 부녀간의 정을 계속 나누었던 것이다. 아빠가 없었던 9년 동안 ‘월미호’는 이 세상에서 은혜를 아빠에게 데려다주는 유일한 존재였던 것이다. 5살 은혜는 어느새 중학교 1학년생으로 훌쩍 자라있었다.

남편이야기가 나오자 씩씩했던 정씨의 눈에 살짝 물기가 어른거렸다.

“배는 물에 떠있어야 하는데 땅 위에 놓아두니 자꾸만 낡아져가네요. 남편과 배한테 미안한 생각이 들어요. 은혜한테도 그렇고, 더 나이 먹기 전에 손 좀 봐서 물에 띄워줘야지요.” 033) 442-3155

 

 

 

출처: chosun.com